추가경정예산 삭감을 두고 고양시와 시의회가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31일 기자회견에 나선 이동환 고양시장.

추가경정예산 삭감을 두고 고양시와 시의회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고양시, 시의회 추경 삭감 거센 비판

이동환 고양특례시장은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한 고양시의회의 예산 삭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시장은 “시장 관심예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백억 원의 민생·경제 사업이 거의 매 회기마다 무차별 삭감되고 있다”며 “시민을 외면하고 도시 발전을 가로막는 비상식적인 결정”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번 제292회 고양시의회 임시회에서는 고양시가 제출한 2025년도 첫 추경 예산안 중 약 161억 원이 삭감됐다. 삭감 대상에는 공립수목원·공립박물관 조성, 원당역세권 발전계획, 킨텍스 지원부지 활성화, 창릉천 우수저류시설, 일산호수공원 북카페 조성 등 총 47건의 주요 사업이 포함됐다.

이 시장은 “이 가운데 상당수는 3차례 이상, 많게는 7차례 반복적으로 삭감된 ‘단골 삭감사업’들”이라며 “여기에 고양시의 장기적 발전과 인프라 확충을 위한 핵심 사업들까지 줄줄이 포함돼, 시정 전반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번번이 삭감됐던 도시기본계획, 공공디자인 진흥계획 등 핵심 도시계획 사업들은 가까스로 편성은 되었으나, 이 중 도시기본계획, 도로건설관리계획은 대폭 감액돼 실제 추진 시 차질이 불가피하다.

특히 이 시장은 인공지능·IT 기반의 ‘거점형 스마트시티 사업’을 대표 사례로 들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24시간 민원서비스, 교통흐름 최적화, 재난예방, 드론 순찰, 자율주행버스 등 시민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스마트시티 사업은 단순한 예산 소비가 아니라, 도시에 대한 혁신적 투자”라며, “정부가 약 400억 원 중 절반을 지원하는데도, 시의회는 고양시 부담분조차 온전히 편성하지 않고 매번 삭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업은 고양시가 전국 지자체와의 경쟁 끝에 국토부 공모에 선정된 것이다. 그러나 시의회 삭감으로 사업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다른 지자체는 예산이 없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업인데, 고양시의회는 스스로 하지 말자고 한다. 이것이 시민을 위한 결정인가”라고 이 시장은 강하게 반문했다.

중소기업 지원 예산도 삭감됐다. 고양시는 CES(세계 최대 IT·소비재 전자산업 전시회) 참가기업을 지원해 지역 중소기업의 수출 확대를 뒷받침할 계획이었지만,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이 시장은 “성장 기회를 스스로 차단한 결정이자, 지역 유망기업들의 미래를 외면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관광 분야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고양시는 고양종합운동장을 활용해 콜드플레이, 오아시스, 지드래곤(GD) 등 글로벌 아티스트의 공연을 잇따라 유치해 왔다. 그러나 관람객을 지역 상권과 관광지로 연계하기 위한 예산이 삭감되면서, 공연 유치의 핵심 취지인 '지역경제 활성화'가 흐려질 위기에 놓였다. 각종 홍보매체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복지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인회와 예술인 창작공간(해움·새들)의 인건비가 삭감되며 현장 운영의 안정성에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시장은 “어르신의 권익과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고양시가 2년 반을 준비해 온 이동환 시장의 핵심 공약인 ‘고양시민복지재단 설립 조례안’은 ‘준비 부족’ 등의 이유로 부결됐다.

고양시는 경기도 내 복지대상자가 가장 많은 도시로, 기존 관공서 조직만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복지재단 설립을 추진해 왔다. 이 시장은 “이제 첫걸음인 조례안을 준비가 부족하다고 거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다고 시작조차 막는 건 핑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사업은 경기도의 동의와 시민 72% 이상의 찬성까지 확보한 상태다.

이 시장은 반복된 예산 삭감 사태가 단순한 갈등을 넘어, 시정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명확한 근거나 대안 없이 예산만 자르는 무책임한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경제 활성화와 인프라 투자 사업까지 삭감되면서 장기적으로 도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도시기본계획을 비롯한 미래 도시 설계 관련 예산이 계속해서 삭감되거나 지연되면서, 도시 발전의 속도 자체가 늦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도시기본계획 재수립 용역 예산은 1년 넘게 4차례 삭감됐고, 이번 추경에서는 삭감된 ‘반쪽짜리 예산’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특히 이 계획은 1기신도시 재정비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예산 차질은 고양시의 중장기 도시 전략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시장은 “계속되는 무분별한 예산 삭감은 고양시라는 기차의 엔진을 끄는 것과 같다”며, “한 번 멈춘 기차는 다시 움직이기까지 두세 배의 시간이 걸린다”고 경고했다.

또한 “두 개의 바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굴러서는 수레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시의회가 이제라도 정치가 아닌 시민을 바라보고, 남은 1년여 고양시의 동력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협조를 호소했다.

시의회, '패악질' 폄하 깊은 유감

고양시의회 김운남 의장은 31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대화와 협력이 필요한 시점에 이루어진 이동환 시장의 긴급 기자회견에 대해 의회의 수장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동환 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의회의 예산 삭감이 시정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의회의 역할은 시민의 혈세를 책임감 있게 심사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거쳐 예산안을 심의하는 것이며, 이러한 의회 본연의 역할수행이 ‘패악질’이라는 표현으로 폄하되어서는 안됨을 분명히 했다.

의회는 이동환 시장이 관심을 갖는 사업이라 예산을 삭감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환 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에서 “준비 부족 등의 예산 삭감 이유는 표면적이며, 사실은 정치적 논리에 따라 ‘이동환’의 예산이기 때문에 삭감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장의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하며, 오히려 이동환 시장의 독단주의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예산안 심사 결과에 대한“시장의 성과를 가로막기 위해 시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의회의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예산 심사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예산이 여러 차례 삭감되고 부결됐다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본인의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더 이상의 ‘남 탓’말고,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스마트시티 사업과 관련해서도, “중앙 정부에서 허락한 사업인데 무엇이 문제냐?”라는 등의 태도는 우리 시민의 혈세를 들여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너무나도 안일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정부 지원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예산 편성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시 재정 부담과 실효성을 고려할 때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검증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중소기업 지원 및 문화·관광 관련 예산 삭감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부분을 조정한 것에 불과하고, 고양시민복지재단 설립 조례안 부결과 관련해서는 복지재단 설립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나, 준비 부족으로 인해 조례안이 부결된 것이며, 충분한 준비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시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동환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원칙과 상식’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했다. 시장이 말하는 ‘원칙과 상식’이란 결국 집행부가 요구하는 예산을 의회가 무조건 승인해야 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으며, 의회는 시민의 혈세를 책임감 있게 다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시 집행부를 감시하고 검토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데, 시장의 ‘원칙’이란 결국 집행부의 의도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라는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의회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시민을 위한 합리적인 예산 심사를 방해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오히려 시 집행부가 의회에 대해 예산을 통과 시켜주지 않으면 ‘시민을 무시하는 의회, 정치적 논리로 시민의 삶을 후퇴시키는 의회’라는 왜곡된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준비 부족’은 말 그대로 ‘준비 부족’이다. 정치적인 논리를 끌어와 시민의 눈을 가리려고 하는 곳이 어느 쪽인지 생각해 볼 필요성을 제기하며, 시 집행부가 정도를 넘어선 책임 떠넘기기를 그만두고, 소통과 협치를 통해 고양 시민과 고양시를 위한 정도를 함께 걷기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