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그림자로라도

박완호

나는 아직 나를 버리지 못하고

허울뿐인 이름에 손발 묶인 채

몸통 없는 그림자로 살아간다

나를 까발리면 나는 어디로 가버리고

모르는 누군가가 거기 덩그러니 남는

생의 쳇바퀴, 돌고 돌아봐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길을 간다

누가 나를 부르나,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누구의 이름을 불러도 혼자만 남게 되는

이곳에서의 삶이란

얼마나 쓸쓸하게 빛나는 건지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텅 빈 몸통 같은,

조금 전의 나를 떠나보내고

아직 오지 않은 나를 불러대는

저 투명한 손짓들, 하지만

그림자의 그림자로라도

이 세상을 버텨낼 것이다, 라고

오늘 나는 또 쓰는 것이다

# 시인을 만난 건 30년도 훨씬 더 전이다. 그림을 그리던 가나인 시인과 왕십리 허름한 술집에서 함께 였지 싶다. 나나 같이 했던 박완호 시인은 조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벗이었던 본명이 홍준현인 가나인 시인 역시 그리 요란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박 시인은 며느리를 보았고 내년이면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시절을 마감하고 은퇴하는 걸로 알고 있다. 시인이 보내주신 시를 두 번 세 번도 더 읽었다.

산다는 게 무얼까. 기억, 추억을 되돌아보면 산다, 쓴다 였다. 詩도 소설도 욕망이요, 애욕이었을까.

삶의 파도 그 의미와 행복? 자유와 희망, 먹고 자고 싸고 며느리, 손자를 보는 기쁨과 사는 재미?

그랬다. 수행자로 글을 쓴다는 거, 텅빈 몸통만 남아 산다는 건 그물에 걸린 새와 같았고 칼날을 밟고 독 있는 풀을 끌어 안고 사는 거 같았다.


산다는 건 늙는다는 거고

늙는다는 건 병든다는 거고

병든다는 건 죽는다는 거일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지는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웠던가. 황홀했던가. 다시는 이놈의 사바로 윤회하지 않으리.

<후회해?>

내가 물었다.

<아니요. 사느라 바빠 후회할 틈이 없었네요.>

간결하고 절제있게

문장 하나 쓰는데도 조심스러운 박 시인이 <제발 아프지 좀 마세요.>하고 타박처럼 말했다.

그랬다. 세상 눈에 보이는 형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이 지은 것도 아닐 것이다. 인연이 모이면 생기고 인연이 흩어지면 곧 없어지리라.

그래도 우리가 만든 세상이었다. 우리가 주인공으로 사는 세상.

세상 봄의 씨앗들이 땅을 의지하여 새싹이 돋는 것처럼

그림자의 그림자로라도

인연이 화합해서. 비록 견디고 버티던 날들도 언젠가는 그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고 空으로 사라진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