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오케스트라
박미산
방안으로 밀려오는 땅거미 나의 시간이 돌아온 거죠 빛 반 어둠 반인 숲속으로 들어가요 공복의 저녁이 탐욕스러워져요 봄의 숲속은 들뜬 노래로 가득해요 곰취와 망초는 푸른 박자로 지휘하고 오가피와 두릅은 가까이 다가오는 공기로 날카로운 가사를 쓰고 생각을 주렁주렁 매단 꽃사과와 청개구리가 잘 익은 리듬을 연못 속으로 끌고 들어가요
바람이 남아있는 빛을 지휘봉으로 쫒아내요 어둠에 놀란 이팝나무가 하얀 눈을 털어내요 눈을 반짝이던 배꽃이 굶주렸던 상상력을 마음껏 손바닥에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던 전나무가 자기를 버리고 날개를 펴요 하루치의 어둠을 메아리가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어요
숲의 별을 끄고 푸른 나의 시간에 입을 맞춰요
서툰 입술이 달싹거리네요
악보도 없이,
박미산/ 시인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졸업.
92년 계간 ‘문학과 의식’ 에 수필로 등단한 뒤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가 있다. ‘조지훈 창작 지원상’과 ‘손곡 문학상’을 수상했다.
# 봄이라면 탱고나 폴카도 좋지만 왈츠다.
왈츠(Walts)는 3/4박자다. 쿵짝짝 쿵짝짝이다. 그 선율이 부드럽고 우아하다.
리드미컬한 게 빙글, 빙글 도는 듯하다. 오스트리리아 에서는 선회하다, 독일어로는 회전하다, 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유행가로는 남쪽나라 바다멀리, 하는고향초,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싶소 하는 나 하나의 사랑, 보고 싶은 얼굴 같은 노래가 있다.
사월의 노래를 다 부르고 오월이 되면
요즘은 덥다. 사월이 왈츠라면 오월은 교향곡交響曲으로 넘어간다. 소나타는 요즘 내가 타는 차 이름이다. 물론 음악에서 소나타는 독주곡 또는 실내악으로 2악장 이상으로 이루어진 걸 말한다. 교향交響으로 가는 것이다.
곰취와 망초는 쿵짝짝 삶아서 데쳐야 하고 오가피와 두릅도 한 번 따먹고 두 번째 쿵짝짝 세 번째 쿵짝짝 쯤 된다. 한 악장이 끝났다 할까. 복사꽃이 이쁘다 했던가? 개인적 쿵짝짝 취향으로 너무 진해 사과꽃만 못하다. 꽃사과 밑으로 개구리 한 마리 폴짝 뛰어 가는 모습을 보면 두 번째 악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베토벤 작곡의 <운명>을 다른 어떤 교향곡보다 좋아한다. 말러의 5번 교향곡도 가끔 틀어 놓지만, 박미산 시인이 오월의 그 그늘 아래 서툰 입술을 달싹거리며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는 서정적이다.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워 고뇌했을까.
들을 수 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는 이 고뇌와 사랑을 누가 쿵짝짝 연주하는 것인가? 악보도 없는 치밀한 합주다. 웅대하고 장엄하다. 5월, 시인의 선율은 밝고 강렬한 하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