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옛날 같지 않다. 옛날에 한나절이면 끝낼 일을 요즘은 하루를 해야 끝이 난다. <오늘 못 하면 내일하고 내일 못하면 모래 하지 뭐> 해도 눈을 씀벅였다.

아직도 모종을 다 심지 못했다. 큰 농사는 아니지만 작은 농사도 아니다.

다른 이들은 내 나이가 되면 농사를 줄여가는데 나는 오히려 이번에 농사를 더 늘렸다. 해봐야 채마밭의 자급자족 수준이고 밭뙈기라고 코맹맹이 수준이라 마을에 노는 밭 오백 평을 도지를 내고 농사를 지었었다. 매해 하는 옥수수, 고구마, 고추 이백 근 정도 하는 정도였지만.

나는 내 길을 간다 했는데, 첩첩 산중에서도 전기세 내고 살아야 했기에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빌린 밭이 절간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 내가 절간을 자주 비우자 <중이냐, 농부냐?> 묻는 이도 있었다. 아는 이들은 밭으로 찾아오곤 했다. 그러면 <중 보고 절에 다니지 마세요.>하며 씩 웃었다.

보고 싶어 왔다, 헛걸음 했던 이가 간혹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럼 이참에 하며, 대방 옥상에 농사 놀이터를 만들었다. 나이 들었다고 못할 게 없었다.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고 오르내리는데 무릎 관절이 아팠다. <그래?>하며 노령 연금 두 달 치를 모아 리프트를 설치했다. 버튼을 누르면 흙이며 화분이며 나를 옥상까지 오르게 해주었다.

그렇게 화분에 미니 밤호박을 심었다. 작년에 해보니 재밌었다. 주먹 만한 호박을 쪄보니 폭폭하게 밤맛이 나는 게 맛있었다.

<앞으로 십 년은 내가 더 놀 수 있겠군. 재밌는 놀이터네. 달마야 놀자.>

살고 싶었다. 기쁘게 살고 싶었다. 유난히 병치레가 잦은 나였다. 감히 중생구제라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는 게 수행이었다. 그저 다른 스님네들이나 중생들에게 누가 되지 않고 해가 되지 않게 그냥 조신조신 살 뿐이었다.


온다는 비는 오지 않고 왜 그리 더운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옥상은 더 더웠다. 에이, 하며 바지를 훌렁 벗고 장화에 팬티만 입고 마지막 견인줄 타고 올라가게 하는 작업을 하는데 절깐으로 차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형이었다. 소만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옴맘마? 삐쩍 마른 고깃덩이야. 빤쓰만 입고 시방 뭐하는 짓이냐?>

사형은 어릴 적부터 나를 삐쩍 마른 고깃덩어리, 가죽부대라 불렀다. 법당 참배를 마친 사형이 물었다.

<천 불 천 탑을 세우고 있어요. 찌질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요.>

<지랄, 모습은 팔만 사 천 가지구먼 뭐, 그런데 농사 저게 다 걱정거리라고, 다 夢幻空花야. 가자. 한 입에 섬강물을 다 삼켜버리게. 내가 점심 사도 되지?>

<.......>

사형의 말에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검은 등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었다. 주섬주섬 바지를 꿰어 입는데 그 울음이 꼭 <홀딱벗고 홀딱벗고> 하는 거 같았다.

뼈만 남은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며 사래 긴 밭을 바라볼 때 내가 참 대견했다. <그 몸으로 해내는 거 보면 차암.> 사형이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지 않아요. 그때그때 살아요.>

<.....그래 네가 참으로 우아하게 사는 거야.>

사형의 말에 나는 그만 킥 하고 웃고 말았다. 비가 오긴 오려나 벌써 여름이 온 건가, 밥맛도 없었는데.

어제는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초현실의 꿈결 같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