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달 별 종점
신은숙
길게 이어지는 이름처럼
오래 남아지는 기억처럼
길이 끝나는 장승리(長承里)
해와 달과 별이 세워진 종점
사람들은 은하로 떠나고
마을은 드넓은 옥수수밭으로 환생해서
알알이 찰진 기억들을 쏟아놓는다
분교의 꼬마들로 북적이는 상점
병원과 불야성 극장
2층짜리 건물엔 이발소 목욕탕
줄지어 선 사택들 광산이 읍내를 먹여살린다는 말
폐광은 소멸의 다른 파도
이제 차부상회는 아무 것도 팔지 않는다
건물 대신 들어선 호밀 혹은 옥수수 밭
안내양이 승객을 구겨넣던 버스는 오지 않는데
해 달 별은 누구를 마중 나온 것일까
종점의 쓸쓸이 더 빛나도록
기억의 편린이 더 반짝이도록
철광을 기리는 구조물은 어디에도 없는데
하루에 한 번 온다는 광산행 버스
아무도 내리지 않는 종점
칠월의 땡볕과 맹렬한 적막을 태우고
기사는 하품을 하며 떠난다
신은숙 시인/ 1970년 양양 출생.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시집으로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그림 에세이 『굳세어라 의기양양』이 있다.
# 노래가 되는 시가 있다. 그림이 되는 시도 있다.
노래나 시나 그림들......
그것들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것들은 "된다"고 해야만 한다.
위의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릴케의 시구이다. 생명과 자연의 그 "있다"로 상징되는 언어들, "되는' 시인들의 아름다운 주지적 감성을 접하는 것이 시의 감상인 것이다.
폐광, 지금은 사라진. 줄지어 서있던 사택들. 1970년대 장면들. 시인의 시적 상상력과 감각적 관찰력으로
<해 달 별은 누구를 마중 나온 것일까> 묻는다.
광부였던 아버지를 추억하고 그렇게 사랑했던 어머니를 추앙하던 유년의 삶을 회고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산뜻하고 선명하다.
시를 쓰면서 그림도 그리며 그 존재론적 탐색을 멈추지 않는 신은숙 시인의 그림에세이 <굳세어라 의기양양>. 시편과 그림들을 보면 얼룩진 쓰라림이 아니라 온화해 진다.
시인이 보내주신 책을 들고 찔레나무를 지났다. 매화나무들 서있는 비탈길도 내려셨다. 버드나무 늘어선 다리로 돌아들어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은 채 개울물 흐르는 소리를 한참 들었다. 헌데 갑자기 몸이 스물스물거리고 들썩거린다. 아무래도 봄비가 오실라 그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