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그. 앉았다 일어나는데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올라나, 찌부드드하다. 일어나 방을 나오니, 마당에 풀이 눈에 거슬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첫번째 일과는 법당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면 두 번째가 룰루랄라. 개여울로 까만 밤하늘과 산보 가는 것이다.

산책에서 돌아오면 절 마당과 밭에 앉아 풀 뽑는 일이었다. 번뇌는 뽑아도 뽑아도 망상은 무성했다. 요즘 몸이 좋지 않아 며칠 게을리 했더니 내 마음밭처럼 절마당인지 풀밭인지. 고추밭의 풀들은 이제 자기들 세상이라도 되는 듯 기세가 등등하다.

그랬다. 승가는 냉혹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마라., 라고. 부처님은 아무 조건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지 않았다. 중노릇 하려고 죽도록 공부했는데. 중 같은 중이 되기 위해서.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죄는 짓지 않고 살고 싶었다. 어디에 있더라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쓸고 닦아도 세월을 이길 수 없었다. 부족하고 못난 게 나의 본래면목이었다. 승부근성이 부족했다. 싸워서 이기며 살지 못했다. 물러서고 돌아서고.

그러다보니, 지난 장마에 법당 뒤편 기와가 몇 장 물러 앉았다. 붉은 진흙덩이가 드러난 곳도 보였다. 옛날 같았으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수리를 했을 거였다. 민망해서 볼 수가 없다. 법당 기와와 기와 사이로 강아지 풀 하나가 바람에 하늘거렸다.

"넌 어쩜 거기까지 올라가 자리를 잡았니?"

내가 말해놓고도 큭 웃었다. 내가 청춘이었을때, 스무 살 때는 또래의 신도들이 많이 왔었다. 서른 살 때도 그런대로 암자는 복작거렸다. 평생 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꼼지락거리며 일을 벌이곤 했다.


산신각 뒤, 밭을 함께 일구어 고추를 심고 사람들을 모아 배추를 심었다. 겨울이 오면 김장을 해서 독거노인들과 장애시설에 보내주곤 했다. 그런데 올 해는 배추 심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절밭이 온통 풀밭이다. 그래도 열정을 갖고 살았는데, 하며 올해도 배추는 한 판이라도 심어 먹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사는 재미가 있었다.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내방 앞 툇마루에 앉아 건너편 산을 보면 언제나 한폭의 그림 같았다. 아침에 해 뜨는 걸 보고 저녁이면 해 지는 걸 보고 살았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던가. 안개가 끼건 비바람 눈보라를 막아주던 산. 산이 좋아 산에서 살았다. 잘 살았나 못 살았나는 내게 그리 큰 의미가 없다.

내게는 사는 게 중요했다. 깊은 산중에서 오늘까지 먹고 살았으면 잘 한 것이다. 내게 사는 거 만큼 절실한 게 없었으니까. 내려놓고 받아들이며 새벽 길을 걸어올라오는데 덩굴덩굴 감겨 올라가는 칡넝쿨에 진한 보라빛 향기가 코를 찔렀다. 망설이다 칡꽃 하나를 땄다.

안분지족하고 살았으면 됐다. 그 소욕지족에 가끔, 먹먹해질 때도 있었지만. 마음도 몸따라 헐거워졌는지. 초라하고 추레한 오늘이 편안하고 좋은 건 이 무슨 까닭일까. 좀 낡으면 어때, 지저분하면 어때? 하고 죽도록 기도했으면 됐지. 죽도록 사랑했으면 됐지. 곳곳에 스며있는 젊은 날의 힘들었던 흔적들을 돌아보며 쓸쓸하게 웃는다.

하여, 오랜만에 다기잔을 펼쳤다. 칡꽃을 물에 씻고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게 보인다. 끓는 물처럼 살았던가. 누가 번뇌를 보리라 하였던가. 번뇌는 번뇌고 보리는 보리인 것을.

그대 물결 앞에 살았던가, 물결 뒤에 살았던가, 하다 땡중님, 궁상 그만 떠시고 이제 차나 한잔 드시지요, 내 속의 내가 나에게 칡차 향기를 권하는 허물이 많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