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 지나고 틀니를 했다. 나 같은 이를 젊은이들은 틀딱이라 불렀다. 틀니를 딱딱거린다는 뜻일 게다. 새로운 소통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로,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줄임말로 신조어다.

시간이 갈수록 틀니와 잇몸 사이가 벌어져 틈으로 음식물이 끼었다. 결국엔 틀니가 헐거워져 잇몸에 상처가 나고 덜그럭거리기 시작했다. 아 된장, 구겨진 감탄사를 내뱉어야만 했다.

틀니를 새로 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의료보험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그건 요 근래 일이었다.

"내가 틀니를 어디다 두었지?"

불편함에 틀니를 빼서 물에 담가 놓고 잤다. 그러다 '부처님 제 틀니 보셨어요?'하며 틀니를 찾아 삼 만리, 내 방으로 공양간으로 헤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외출해야 하는데 틀니가 보이지 않는 거였다. 내가 우스웠다. 틀니가 결코 작은 게 아닌데.

치과엘 갔더니 임플란트 틀니를 권했다. 그런데 그 비용이 엄청난 거였다.

'산다는 게 왜 이리 팍팍하고 쪽팔리는지' 하며 어이없는 한 판 쇼를 하고 '젠장, 된장'하며 급하게 서둘러 외출했는데 뭔가 허망하고 몽롱한 기분에 하루종일 개운치 않았다.

얼마 전 서울에 일정이 있어 일을 마치고 안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로 향하던 길이었다.

"스님이 어찌 이렇게 늦은 시간에 다니세요."

그때 나보다 더 나이가 든 거사님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왜 밤에는 길이 없습니까?"

잇몸이 붓고 아프니 몸에서 열이 끓어올랐다. 그런 와중에 시빗조의 물음에 형편없이 비굴하고 비겁해져 있던 내 말투가 고울 리 없었다.

"스님, 어디 계세요?"

"저 여기 있습니다."

그랬다. 내가 걸어온 길 그 길은 새 날 새 세상으로 가려는 험로였고 협로였다.


늦은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재밌다는 양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킥킥대고 웃는 눈치였다. 그제야 물음을 던진 어르신을 유심히 보았다. 관상을 보니 평범한 이는 아니었다.

신발이며 입은 옷, 안경이며 눈빛의 품새가 파고다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의 행세는 아니었다.

"혜범스님이시죠?"

"......네?"

"스님이 내신 책 달을 삼킨 개구리 재밌게 본 적이 있습니다."

"....크으."

그제야 나는 꼬리를 내리고 거사를 건네봤다.

"그나저나 스님, 스님이 염불 한 자락 하시면 비용이 어느 정도나 들까요?"

거사는 힐끔 내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비싸서 저 못 써요. 다른 염불 스님한테 부탁을 하세요."

내 말에 거사가 픽 웃었다.

일체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틀니가 헐거워지자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들 만나기가 좀 그랬다. 입안은 부어 있었고 통증으로 속으로 징징거릴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먹는 게 부실하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는 그날 밤의 일들을 잊었다. 그런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D그룹에서 지방의 모 대교를 건설하는데 안전기원제를 지내는데 집전해 주실 수 있냐는 거였다.

"내 틀니가 헐거워 염불이 밖으로 샐 텐데."

"그래도 스님께 부탁하라는 오다가 떨어져서요."

집전 해주면 임플란트 틀니를 해주겠다는 거였다.

염불이야 정성스레 하면 될 것이다. 어디 가서 염불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하여, 담당자는 날짜와 시간, 장소를 이야기 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이번 생. 그렇게 헛걸음, 헛 살지 만은 않았다는 야릇한 희열과 쾌감에 나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을 되뇌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