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니 허름한 노인네가 힘없이 서있다. 깃이 닳은 낡고 바랜 승복이다. 소매끝에는 회색 실이 삐져나와 보풀을 매달고 있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느릿느릿하고 행동이 굼떴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눈빛이 흐렸다. 빢빢머리에는 십원짜리 동전만한 놈이 한 개 단추만한 검은 검버섯이 두 개 보였다. 자세히 보면 빠릿빠릿하지 않은 몸과 심한 건 아니지만 조금 손을 떠는 수전증 증세도 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 어디서 이렇게 왔는지?"

거울 속의 영감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거울 속의 영감태기는 멋쩍은 듯 말이 없다. 우두커니 서있다 희미하게 웃었다. 칠칠치 못해 늘 앞가림을 못했다.

의사는 척추 협착증에 전립선 비대라 했다. 자다가 두 번 세번 깼다. 지난 밤 자다 깼고 비몽사몽에 봉당을 내려오다 그만 폭싹 주저 앉고 말았다. '아고고'했고 발목에 통증을 느꼈다. 그 아픈 가운데서도 뇨기를 느꼈다. 주련이 붙어 있는 채양 기둥을 잡고 소피를 보는데 '지랄'하면서 헛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거의 기다시피 다시 방으로 돌아왔는데 발목의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단편 청탁을 받았다. 처음엔 거절했다. 칼럼이나 단상 같은 짧은 글들은 청탁 받았는데 이젠 한 물 간 지라 요즘은 수필도 가뭄에 콩 나듯 뜸했다. 그런데 잡지 편집을 하는 후배가 불교특집이라 외치며 부탁을 해 하는 수 없이 승락을 했다.

'한 번 써보세요'해서 시작한 거였다. 기실 단편소설을 쓴 지는 몇 십 년 되었다. 무명이었고 삼류 지방지 출신이라 등단시 잠깐 청탁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었다. 써봐야 지면이 없었던 지라 발표도 못하는 글에 매달리느니 쓰면 돈이 되는 장편에만 쭉 매달렸었다.


미륵암은 부론강을 마주하고 선 미륵산 중턱에 자리한 삼합리 작은 암자였다. 요사채 방문을 열면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침에 해가 뜨는 걸 볼 수 있고 저녁이면 해가 지는 걸 볼수 있는 남향받이였다. 가운데 법당이 자리했고 법당 왼쪽 뒷편으로으로 산신각이 있었다. 그 법당 왼쪽으로 공양간과 아주 작은 방과 대방이 붙어 있고 그 맞은 편으로 요사채가 있는 작은 암자였다. 법당과 산신각만 기와지붕이었고 요사채 지붕은 슬레이트로 되어 있었다. 대개 절은 ㄷ자 이거나 만(卍)자로 되어 있는데 직선을 그은 듯 남향으로 법당이 가운데 있었고 왼쪽으로 산신각 그 왼쪽 앞으로 공양간 공양간에 붙은 대방과 작은 방, 법당 오른쪽으로 작은 방이 셋이 졸르라니 가로로 붙은 흙벽돌로 지은 슬레이트 지붕 건물조차 남향으로 남한강이 섬강과 만나는 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는 천년 절터였다.

발목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그놈의 소설이 뭔지, 오랜만의 청탁이라 지난 밤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소설이라고는 겨우 도입부만 잡아 놓은 거였다. 그리고 글이 나가지 않았다.

"지갑이 어딨지?"

도저히 내가 운전을 해서 병원 응급실까지 갈 수가 없었다. 핸드폰으로 119 전화를 했고 사정이야기를 했지만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곤혹스러웠다. 평상시 외출하고 돌아오면 책상 서랍에 넣곤 했는데 지갑이 눈에 띄지 않았다.

기우뚱 절룩거리며 걸려있는 옷들 여기저기 호주머니를 뒤져도 이 서랍 저 서랍을 열어봐도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갑 속에 돈이 많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서랍에 있는 통장과 도장이 있는 비닐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이거면 되겠지'하는데 면 소재지 소방서에서 온 119 차량이 절 마당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다 그러셨어요."

"오줌 누러 나오다."

말끝을 대신해 법당 추녀에 달려 있던 풍경이 뎅그렁 울었다.

"그나저나 나는 또 이 송장을 끌고 병원엘 가야 하는 거야? 이제 다 썼으면 버려야 하는 것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내 말에 어깨를 부축여주던 119 구급대원이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