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물고기】 4-바람 불면 바람 되어 비가 오면 비가 되어

혜범 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1.06.29 11:02 | 최종 수정 2021.06.29 11:29 의견 0

바람 되러 간다.

‘내게는 주인인 나와 손님인 나와 도둑인 내가 있다.’

한참 산길을 오르며 중얼거리던 학인(學人)이 걷다보니 기암절벽 앞에 자리한 동암(東庵)이 보였다. 노스님 한 분이 앉아 있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려 하는데 노스님이 물음 하나를 툭 던졌다.

“이 산에는 길이 없는데 그대는 어디로 왔는고?”

“길이 없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스님께선 어디로부터 들어오셨는지요?”

“나는 운수(雲水)를 따라 오지 않았다.”

“운수(雲水)….”

학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절밥만 축내고 있는 것 같아 노사(老師)를 뵙고 만행(萬行)을 떠나려 했던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어디로 가려느냐?”

“스님께서는 보지 못하시는군요.”

“나는 듣지도 못하지.”

“스님께서는 보고 듣질 못하시는데 어떻게 무정이 설법할 줄 안다고 하셨는지요?”

“네놈이 보고 듣질 못해서이지. 네놈은 내가 아니기에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생에게는 들을 자격이 없겠군요.”

“나는 볼 눈이 없고 들을 귀가 없는 놈에게는 설법하지 않는다.”

“중생들이 들은 뒤엔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중생이 아니지.”

“무정이 설법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경전에 근거하셨는지요?”

“화엄경에 보면 ‘세계가 말을 하고 중생이 말을 하며 삼세 일체가 설법한다’고 되어 있다.”

“……."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네놈이 부모로 받은 귀로는 끝내 듣지 못한다.”

그때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듣느냐?”

“듣지 못합니다. 스님의 귀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주려느냐?”

“제가 귀가 없어서입니다.”

“설사 준다 해도 내 귀를 네놈 어디에다 붙이겠느냐?”

“……."

학인이 말이 없자 노사가 쯧쯧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귀때기를 구걸하는 것이 고작 너의 눈이더냐?”

“눈은 아닙니다.”

“어리석은 놈.”

노사가 쯧쯧 혀를 차며,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_그림 : 정운자/시인ㆍ수채화가

혜범 스님은 1976년에 입산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으로 등단했다.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문학세계사에서 <소설 반야심경>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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