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16년에 진행하게 된 낭독모임에 참석하게 됐을 때, 기억한 한 문장이 있다. “가치 있는 일은 매일 반복해야 한다”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 오전에 행해진 책모임은 코로나19가 덮친 2019년 말까지 지속됐다. 2016년에는 토요일 아침마다 동네청소를 하기로 했고, 그 역시 지속됐다. 2021년 현재는 두 모임 모두 끊겨있다. 한번 끊어지자 다시 이어지기 어려웠다.
'루틴(routine)'은 매일 반복하여 진행하는 어떤 일이다. 같은 패턴이나 습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루틴이란 말 자체가 지속하고, 끊어지지 아니하고 행하여야 하는 것이고, 대체로 이것 자체가 그 가치나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면 가치가 그 루틴에 의해서만 제대로 지켜지기 때문이다.
2020년과 2021년에 대략 잊거나 잃어버린 루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두 가지 계기에서였다. 하나는 올해 우리 동네 성수동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다른 하나는 역시나 동네 오매갤러리 <자수살롱전>의 작가들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과장을 보태 어마어마하게 치러지던 <서울국제도서전> 행사는 우리 동네에선 조금 작아졌다. 하지만 내게 웹툰 작가들의 인터뷰 기록들은 인상적이었다. 책을 책상에 얹고, 작가에 보내는 독자 관람객들의 메모를 붙여두는 간단한 부스였지만, 깨알같이 작가의 말들이 적혀있었다. 거기 작가들의 ‘부활과정’도 있었다.
웹툰은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든다. 허영만 작가시든가? “소설에선 몇 만의 병사가 성벽을 올랐다. 이렇게 한 줄만 쓰면 된다. 하지만 만화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그려야 하는가?” 짐작되시나? 만화가는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옷차림 하나까지, 시대의 소품까지 마음이 간다. 쉽게쉽게 간결한 그림체로 마감 짓는 웹툰 작가들도 많지만, 그네들조차 창조의 고통을 겪는다. 치질은 물론이고, 때로 척추가 가라앉고, 시야가 침침해지고, 몸져눕기도 허다하다.
자수 작가들 열 명을 인터뷰했을 때, 그네들에게 찾은 공통점이 있었다. 작가들은 성실성이 말할 수 없게 도드라졌다. 술 먹고 놀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내달리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한 점을 찌르고, 한 가닥의 실을 꼽고 빼내며 형태를 만들어가는 동안 그네들 역시 “눈이 빠지고, 등허리가 굳는” 고통을 대개 겪었다. 전시에 맞추자면, 공모를 하자면, 대작을 펴려면, 혹은 무아지경에 빠져 작품을 하다가 그들이 잃는 것이 건강이었다.
만화가들과 자수 작가들은 어디서 해법을 찾았을까? 루틴이었다. 그네들은 열정이 생기면 밤을 새워가며 작업하는 이전의 방식을 버렸다. 시간이 되면 잠을 자고, 일어나야할 시간에는 일어났다. 밥을 규칙적으로 먹고, 정해진 시간에 -사람마다 다르지만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일했다. ‘삘’이 온다고 더 일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을 놓치지도 미루지도 않았다. 이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는데, 그러므로 생활이 단순해져야 했는데, 대개 이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렇지 못한 이는 여러 면에서 어려운 일을 맞았다. 가야할 곳, 이뤄야 할 성취에 미달했다.
1909년에서 1912년 사이에 있었던 노르웨이인 아문센과 영국인 스콧의 남극점을 향한 대결은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루틴의 관점에서 아문센은 승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루 20마일을 꾸준히 전진한 것은 그가 가진 수많은 성공비결 중 핵심을 이룬다(스콧은 열정을 따라 어느 날은 더 많이 갔고, 악천후엔 쉬는 방식이었다고 전한다). 혼돈과 고통을 견디고 넘는 방법? 그건 정해진 가치를 지루하게 반복하는 일이다. 시간에 복종해야 한다. 나의 열정이나 관심이나 의지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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