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로 세상읽기】미국 독립혁명과 미국의 탄생-1

김위영 산업번역 크리덴셜 대표 승인 2022.07.11 01:13 | 최종 수정 2022.07.18 00:17 의견 0

It has been frequently remarked that it seems to have been reserved to the people of this country, by their conduct and example, to decide the important question, whether societies of men are really capable or not of establishing good government from reflection and choice, or whether they are forever destined to depend for their political constitutions on accident and force. --Hamilton, Madison, Jay, The Federalist papers, No.1

인간사회가 고려와 선택에서 좋은 정부를 건립할 능력이 실제로 있는지와 그들의 정치체제를 우연과 폭력에 의존해야 할 영원한 운명이 주어졌는지에 대한 중요한 의문을 인간의 행동과 사례로서 결정하는 것이 미국의 국민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자주 언급되었다. -해밀턴, 메디슨, 제이 <페더리스트 페이퍼> 중에서

1776년 7월 4일은 미국이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독립기념일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로 초대 재무부장관과 미국 산업의 기초를 닦은 해밀턴, 제4대 대통령 메디슨, 미국연방대법원 초대 원장 존 제이가 쓴 <The Federalist papers>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가장 많이 인용하는 정치학의 고전으로, 미국 연방정부의 탄생을 주창한 논설집이다.

영국의 속령으로 13개 주의 미국 식민지는 구심점이 없이 서로 왕래(교역)도 하지 않고, 자신들을 영국의 양자로 보아 모든 것을 영국에 의존했다. 1770년 당시에 미국 인구의 다수가 영국의 군주제를 지지하는 왕당파였다. 이런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혁명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은 영국 정부의 무지와 잇따른 조세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 여기에 미국으로 이민 온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인의 증가로 영국에 대한 유대가 감소하고, 군주제를 반대하며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의회 중심의 반권위주의적인 급진 휘그 사상이 만연했다. 미국 독립전쟁 중에 미국 대륙군과 민병대는 미국 독립이란 대의를 내건 전쟁에서 승리했고, 영국군은 18세기 최고의 군대임에도 사기 저하와 군정 실패로 패배했다.

결국 미국의 독립 쟁취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탁월한 능력과 활약, 그리고 국민들의 광범위한 공감대와 지지로 가능했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했으나 흑인 노예문제를 외면한 반쪽 혁명에 그쳤다면 남북전쟁을 통해 흑인 노예가 해방되면서 미국 독립혁명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 미국 독립혁명은 다양한 사상에서 나왔다

_<The Ideological Origins of the American Revolution(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 1992)>

미국 하버드대학의 명예교수인 Bernard Bailyn(버나드 베일린, 1922~2020)은 미국 혁명사에서 이데올로기 학파를 형성할 정도로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권위자로,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The ideology of the Revolution, derived from many sources, was dominated by a peculiar strand of British political thought. It was a cluster of convictions focused on the effort to free the individual from oppressive misuse of power, from the tyranny of the state. --Pvi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원천에서 기인하였지만, 영국의 정치사상의 특이한 가닥에 지배되었다. 그것은 권력의 억압적인 오용, 다시 말해 국가의 폭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려는 노력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신념이었다.

Whatever deficiencies the lead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 may have had, reticence, fortunately, was not one of them. They wrote easily and amply, and turned out in the space of scarcely a decade and a half and from a small number of presses a rich literature of theory, argument, opinion, and polemic. --P1

미국 혁명의 지도자들이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었던 간에, 다행스러운 것은 과묵함이 그런 결점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쉽게 또 많이 썼고, 거의 15년 안에 얼마 안 되는 인쇄를 통해서 풍부한 양의 이론, 주장, 견해, 그리고 논평을 내놓았다.

But it had been subjected to severe pressure as a result of the existence of Revolutionary ideas, and it bore the marks ever after. As long as the institution of slavery lasted, the burden of proof would lie with its advocates to show why the statement “all men are created equal” did not mean precisely what it said: all men, “white or black.” --P246

그러나 노예제는 혁명이념이 존재한 결과로서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후 언제나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노예제가 계속되는 동안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선언이 글자 그대로 정확하게 “백인이든 흑인이든 간에” 모든 인간을 정확히 의미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되는 부담을 그 옹호자들이 지게 되었다.

Federalists and antifederalists both agreed that man in his deepest nature was selfish and corrupt; that blind ambition most often overcomes even more clear-eyed rationality; and that the lust for power was so overwhelming that no one should ever be entrusted with unqualified authority. --P368

연방파도 반영방파도 모두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은 타락하기 쉬운 이기적 존재라는 점, 맹목적 야심은 가장 총명한 이성을 능가하다는 점, 그리고 권력욕이란 너무 압도적이어서 누구에게도 제한 없는 권위를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동의했다.

Their ideological inheritance, which so clearly warned them of the dangers of what they were doing and which fueled the antifederalists’ objections to the Constitution, had to be confronted and assessed. The past would have to be laid to rest; not rejected in favor of some other, different set of beliefs, but refined, renewed, brought up to date—worked out, fulfilled. --P377

그들이 물려받았던 이데올로기적 유산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어떤 위험한 요소가 있는지 매우 분명하게 경고해 주고 있었고, 또 그 유산은 반연방파가 헌법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도록 부추겼기에 직면하고 검토해야 했다. 그것을 물려준 과거는 매장되어야 했다. 무언가 다른 것을 선호하고 어떤 신념체제를 주장하기 위해 과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정제하고 갱신하며 시대에 맞게 수정하고 해결하여 완성해야 했다.

◆ 미국 독립혁명은 대의를 위한 전쟁이었다

_<The Glorious Cause; The American Revolution, 1763~1789(영광스러운 대의; 미국혁명 1763~1789, 2007)>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교수로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미국사 시리즈의 편집책임자인 Robert Middlekauff(로버트 미들코프, 1929~ )는 자신의 저서를 시리즈 제1권으로 발간했다.

The colonies were colonies, after all, and as such they were “dependencies,” plants set out by superiors, the “children” of the “mother country,” and “our subjects.” The language used to describe the colonies and their subordination expressed certain realities. --P28

결국 식민지는 식민지일 뿐이므로 13개 식민지는 ‘속령’이며, 윗사람이 심어놓은 화초이고, ‘모국의 자녀들’이며 ‘우리의 신하’라는 것이었다. 식민지와 그 예속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언어는 어떤 특정한 현실을 묘사했다.

First of all, the Americans were a divided people, cut up among thirteen colonies on the mainland. They had no common political center, and London was really too far away to serve as such. When problems of governance arose the colonies naturally loked to their provincial capitals. --P31

먼저 아메리카인이 분열된 집단이며 대륙에서 13개 식민지로 나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정치적 중심이 없었다. 런던은 너무 멀리 떨어져 이런 중심이 되지 못했다. 통치의 문제가 발생하면 식민지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주의 수도에 의존했다.

The generation that made the Revolution were the children of the twice born, the heirs of this seventeenth-century religious tradition. George Washington, Thomas Jefferson, John Adams, Benjamin Franklin, and many who followed them into revolution may not have been men moved by religious passions. But all had been marked by the moral disposition of a passionate Protestantism. --P52

미국혁명을 만든 세대는 신앙의 각성을 통해 두 번 태어난 사람들의 자녀이자 17세기 종교적 전통의 후계자들이었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벤저민 프랭클린, 그리고 이들을 뒤따라 혁명에 가담한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열정으로 움직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열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도덕적 기질을 확고히 가지고 있었다.

For political tacticians of considerable skill, these ministers made some surprising mistakes: making decisions in ignorance of American views was one of the worst, and refusing to compromise when these views were expressed was hardly less serious. --P53

상당한 기량을 갖춘 정치적 전략가로서 영국 각료들은 몇 가지 놀라운 실수를 저질렀다. 아메리카인의 견해를 잘 모르는 채로 정책을 결정한 것이 최악의 실수였고, 그들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명했을 때 타협하기를 거부한 것은 거의 심각한 실수였다.

On the surface the American’s preoccupation with their property—more particularly their determination to resist the levy of taxes on it—seems petty, demeaning, poor stuff with which to make a revolution as they were soon to do with the cry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Their concern with property, indeed their obsession with it, should not be dismissed easily. --P122

표면적으로 아메리카인들이 재산에 집착한 것-특히 그 재산에 부과된 세금을 거부하기로 한 결정-은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로는 사소하고 위신이 떨어지며 부족해 보인다. 아메리카인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의 재산에 대한 걱정이나 강박증은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Perhaps more than most crises in the past, revolutions take on the appearance of inevitable, even natural events. They usually have small beginnings that grow into large confrontations between political bodies and a people. Riots become rebellions, and rebellions, war; at the climax, power shifts —or seems to—as a ruler or class is deposed and the state transformed. --P159

과거에 발생한 대부분의 위기보다도 혁명은 불가피하고, 심지어 자연스러운 사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혁명은 일반적으로 작은 시작으로 정치기구와 인민 사이의 대규모 대결로 확대된다. 폭동은 반란이 되고, 반란은 전쟁이 된다. 그리고 혁명의 절정에서는 어떤 통치자 또는 계급이 제거되고, 국가가 변모하면서 권력이 이동하거나 적어도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Recent history culminating in the Massacre was leading them to the discovery that perhaps they were the bastard of England —and the legitimate children of America. --P213

보스턴 학살로 정점에 달하는 최근의 역사는 어쩌면 그들 미국인들은 영국의 서자일지 모르나, 그래도 아메리카의 적자라는 것을 발견하도록 인도했다.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pproved by Congress declared the Americans free of Britain. That declaration defined American purposes and established a standard for which many had already died. And for which more would fight —and die. For most white Americans, declaring their independence from Britain was not merely enough —their brethren given their lives— it was a glorious act. --P339

대륙회의가 승인한 독립선언서는 아메리카인이 영국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아메리카의 목적을 규정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친 기준을 수립했다. 그 기준을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전장에서 싸우고 죽을 것이다. 대부분의 백인 아메리카인은 독립선언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동포들은 독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행동이었다.

The most important was what they came to call the glorious cause—the defense of republican freedom. This cause and the way it was understood—as a providential struggle of good against evil—expressed the values of American culture and armed Americans for war. --P602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이 영광스런 대의-공화주의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대의와 그 대의가 이해되는 방식-악에 대한 선의 섭리적 전쟁처럼-은 아메리카의 문화의 가치를 표현해 주었고, 아메리카인을 무장하여 전쟁에 참가하게 했다.

Thus the delegates placed their trust in the people because they had no choice: a republic had to found itself on the people. Their suspicious of popular power led to a preoccupation with restraints and curbs on the undue exercise of power by heedless majorities. At the same time the delegates’ belief in majority rule, as an indispensable part of republican government, remained strong. --P673

따라서 대표들은 국민에 신뢰를 두었다. 다른 선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은 반드시 국민에 밑바탕을 두어야 했다. 대중적 권력에 대한 대표들의 의심은 경솔한 다수가 부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억제하고 제어하는 것에 몰입했다. 동시에 대표들은 공화정의 필수사항인 다수결원칙에 대해 굳건한 신념을 유지했다.

In the years following independence, the Revolution released —or inspired—an enormous display of creative imagination. The Constitution was its finest expression, a profoundly original creation that took daring even as it drew upon the American and, let it be clearly recognized, The British past. It represented for its makers the ultimate defense of liberty. --P687

독립선언 이후 몇 년 동안 혁명은 창의적 상상에 엄청난 연출을 발휘하고 영감을 주었다. 헌법은 가장 훌륭한 표현이었고, 미국인들을 끌어들인 심오한 독창적인 창조물이었으며, 영국의 과거를 분명히 인식시켰다. 헌법의 제정자들은 자유의 궁극적인 옹호를 대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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