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폭시란 투명한 플라스틱이다. 에폭시와 경화제는 1:1의 비율인데, 처음에 나올 때 둘은 나뉘어 있다. 그런데 이 둘을 섞으면 이제 천천히 경화된다. 코팅 기법으로 바닥에 칠하면 그야말로 1mm가 안되게 칠해진다. 라이닝이란 방법은 두께를 1mm 이상 만들어낸다. 안정적으로 제대로 에폭시 적인 특성을 구현하려면 3mm쯤 돼야하는데, 물론 그러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코팅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다) 에폭시는 실내 바닥재로 쓰이고, 반영구 아니 건물수명과 함께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에폭시를 우리 조합의 바닥에 깔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이 건물은 현재 60여 년쯤 된 건물이다. 워낙 튼튼하게 골조를 세우고 지어진 건물이라 구조 자체는 견고한데, 바닥재 공사를 한 적이 없다. 시멘트 바닥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여기에 들어오는 임대사업자들은 대략 장판 정도를 깔고 공장이나 교회나 기타 용도로 썼더랬다. 장판만큼 쉽게 시공되는 바닥재는 드문 셈이다.
그런데 공장 등이 나가고 2년여쯤 이곳이 비어있을 때, 우리는 여기에서 노래 교실을 했었다. 공장이 나가며 바닥재 그러니까 당연히 장판까지 비웠는데, 그러자 콘크리트 타설된 원래 바닥이 드러났다. 사람이 들고 나고, 오랫동안 장판 아래 습기 같은 게 더해져, 바닥은 이제 잘게 부서져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노래를 하다가 콜록콜록. 그러니 바닥공사를 하지 않는다면 이곳은 더 이상 무슨 문화적 허브가 같은 게 되기는 어려웠다.
대안은 열댓 가지는 되었을 것이다. 다만 비용 문제로 한정이 있기 때문에 결론은 두서너 가지였다. 장판을 깔거나, 에폭시를 치거나, 타일을 두르거나. 우리의 선택은 에폭시였다. 바닥 면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완벽하게 딱딱한 바닥 면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 진행할 수도 있을 만큼 사실 간단한 공정인데(그걸 배우려고 하루 유튜브에서 공부를 하긴 했지만) 파인 곳을 에폭시 퍼티로 채우고 에폭시를 부으면 평탄면 작업도 완벽할 터였다. 장판을 깔면, 폼도 안 살고, 바닥면이 원래 깔끔해야 했었으니까.
서론이 길었다. 바닥공사란 칠 공사와 같다. 에폭시를 부어 외부마감을 하려면 이것이 기존 벽체나 바닥과 정확하게 붙어야 한다. 물감이나 유화는 일종의 색깔이 있는 접착제라야 한다. 그게 종이나 캔버스에 붙어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칠과 표면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다면? 당연히 ‘칠’은 역할을 못 하게 된다. 해서 필요한 작업들이 있다.
먼저 에폭시나 물감 같은 상도제를 칠하기 전에 하도제가 칠해져야 한다. 젯소 같은 재료가 그것이다. 에폭시도 하도제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바닥이나 벽면 등 표면에 먼지나 물기나 오렴돼 있다면? 하도제도 붙을 리 만무. 청소가 제대로 돼 있어야 한다. 그래도 문제가 또 있다. 바닥 면 자체가 약하거나 부식돼 있다면? 그것부터 처리가 돼야 한다. 공사현장에서 이를 해결하는 가장 흔하고 손쉬운 방법은 채우는 것이다. 퍼티 등이 쓰인다. 부슬부슬한 표면을 강하게 서로 잡아주는 강화제도 써야 한다. 수평도 잡아주어야 하고….
칠은 단순하지만, 그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이렇게나 많다. 다시 정리하면 칠(상도제)-하도제-청소-표면강화. 즉 칠 이전에 적어도 세 단계의 핵심적인 일들이 필요하다. 이 세계가 없으면 칠의 세계도 없다. 칠은 하도와 청소와 강화 이러한 여러 구성요소가 모두 필요하다. 그게 없다면 ‘칠’한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칠은 벗겨진다. 어떤 색과 형태로 꾸몄건, 다 부질없다.
그렇다면 ‘칠’이란 것도 칠 이전에 있어온 모든 것들로 완성에 다가간다. 칠하고 계신가? 그 이전에 전제들은 충분히 충족되었는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는가? 그게 없고는 계속 일은 어렵고, 삐걱거리고, 결과를 내기 어렵고, 낸다 한들 곧 무너질 것이다. 화려한 강남의 도시가 칠이라면, 하도와 청소와 강화는 무엇이었을까? 실마리는 늘 거기에 있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