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수의 수읽기】 오독誤讀_잘못 읽음

손종수 승인 2022.08.23 10:11 의견 0

젊은 세대의 문해력 논란이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명문대를 나왔다 뻐기는 종자 중 모지리들이 꽤 많음을 봐왔기에 그때마다 그런가보다 별 관심 없이 지나쳤다.

실은, 별 관심이 없어 지나친 게 아니라 떠들어봐야 달라지지 않으니까 예전처럼 변화의 필요성을 외치지 않을 뿐이다. 오래전부터 ‘한자(漢字)를 한글로 표기한다고 해서 순우리말이 되는 게 아니니 어린이부터 한자병행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었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 중 문장 해석의 중심이 되는 의미를 가진 명사는 거의 한자다. 한자 중에는 한글로 표기하면 그 의미를 잘못 알게 될 수도 있는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 발음은 같으나 의미가 다른 말)가 많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한자를 익히지 않으면 문장의 해석 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아니, 대학원까지 온통 진학이나 취업학원이 되다시피 해서 수능과 무관한 책은 거의 읽지 않는 젊은 세대는 특히 그렇다. 이런 논란이 있다고 해서 달라질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나라 교육부는 오래전에 망가졌기 때문이다.

취임하자마자 뜬금없이 ‘5세 아동 조기교육’을 공청 절차도 없이 밀어붙이려던 교육 비전문가에 음주 운전자 전력을 가진 수장으로 중용됐다 낙마한 장관과 표절을 지나쳐 복붙(복사해 갖다 붙이기)투성이의 잡문에 박사학위를 주고도 재심사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려놓고 ‘집단지성’의 결론이라고 주장하는 ‘집단 실성’ 수준의 대학교수가 61%나 되는 대학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상징적 근거다.

그래도 그렇지. 농담으로나 주고받던 ‘심심한 사과’를 진짜 심심해서 무료하기 짝이 없는 사과로 알고 ‘사흘’을 4일로 알며 ‘금일’을 금요일로 오독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잘못 이해할 줄은 몰랐다.

조선 말기 우리 한글은, 34년 11개월 일제 치하의 억압으로 제대로 자리 잡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가슴 아프지만 토착화한 한자의 부축이 없으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절름발이 글이 순우리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글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문장 독해력을 가지려면 한자를 배워야 한다.

한석봉 천자문(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사실, 이 불행의 책임은 젊은 세대의 것이 아니다. 해방 이후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 우리말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을 진 국립국어연구원이라는 기관에서 내 기억에 남게 한 위업 중 하나는, 붙여 써도 되고 띄어 써도 될 ‘띄어쓰기’ 하나를 수십 년 동안 붙였다 띄었다 번복하는 짓으로 허송세월하더라는 것이다.

이 모든 불행은, 우리말 장려라는 허울 좋은 국수주의로 한자 교육을 없애 배울 기회를 박탈하고 초등부터 대학까지 취업학원으로 만들어버린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대학생들의 문해력이 끔찍한 수준’이라며 비웃는 꼰대들 많이 봤다. 나를 포함한 구세대가 저지른 끔찍한 실수임을 모르는 무지다. 교육환경을, 아이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비웃을 자격이 있나?

늦더라도 첫 단추를 다시 꿰는 게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지만 이제는, 수능에 묶여 중노동이나 다름없는 공부에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한자 교육 병행하자는 헛소리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취업 학원화한 학교가 진정한 ‘사람 교육의 배움터’로 바뀌지 않는 이상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임을 장담한다.

이 와중에 취임 100일이 지나기도 전에 지지율을 20~30% 대로 곤두박질시킨 어느 분은 “전 세대에 걸쳐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도 체계적으로 제공돼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남기셨더라. 교육 비전문가를 수장으로 앉혔다가 도로 끌어내리고 ‘전 정권 장관들보다 훌륭한 분. 눈치 보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위로하셨던 분이 누구더라?

디지털 문해력? 아니,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에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따로 있나?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2등은 간다’라는 어르신들 말씀도 있는데 명문대 졸업하고 승승장구, 그 자리까지 가면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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