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니들이랑 강엘 갔다. 유기견들처럼 강어귀에 앉았다. 말이 줄어드는 나이, 강물 출렁이는 소리 들려왔다. 내가 있어 왔다는, 흘러가는 강물이라도 바라볼 수 있어 축복이라는.
갑순이 강 건너 보내고 혼자 밥 끓여 먹고 산다는 갑돌이
평생 나쁜 놈들 잡으러 돌아다녔다는 강력계 형사출신의 갑돌이
우체국에서 학교에 청춘을 다 바쳤다는 갑돌이
평생 남의 고름 짜주고 찢어진 상처 꿰매주며 살았다는 갑돌이
여기 은섬포에 옛날에 나룻배가 있었다네.
다리가 놓이기 전 은빛 강 건너
대처로 나간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네.
지지리 궁상 갑돌이는 갑순이를 기다렸다네.
갑돌이를 버리고 간 갑순이 그니는 잘 살았을까.
못생긴 갑순이를 버리고 간 갑돌이는
부장검사짓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었다지.
금빛 노을이 비치고 있었다. 느릿느릿 어둠이 내리고
검은 강물이 그 긴 몸을 뒤척이고
여태껏 소식 없다는 갑돌이 갑순이들
은섬강 강물 위로 강이 되어 흐르는 갑돌이모냥
잉어는 주둥이를 내밀고 다가오다
첨벙 허공으로 뛰어 오르는데
졸르라니 앉은 그니들은 우리들을 강 건네 준 나룻터의 그 뱃사공모냥 강 건너간 그니들을 기다리느라 누릴 만큼 누려본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가에 여전히 출렁이는 바람으로 앉아 일어설 줄 몰랐다.
배추밭에 갔더니 녹색 자벌레 한 마리 배추 위에 앉아 잎을 갉아 먹고 있다. 고물거리는 놈을 보고 ‘얘, 안돼’하는 내가 미안하다. 그래도 어쩌랴, 장갑 낀 손으로 배추에서 떼어내고 ‘다른 데 가서 살아’하고 배추밭 바깥으로 던져주었다. 허허, 그런데 밭이랑에 서서 보니 밭고랑에 또 한 마리 녹색 자벌레 한 놈이 inching gait, looping gait하고 있다.
허공에 몸을 세우더니 연초록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대더니 한 뼘 세상을 기어가고 있다. 재밌어졌다. 오체투지는 오체투지인데 등을 잔뜩 구부렸다 펴면서 일보일배하는 모습에서 순간 왜 every storm runs out of rain이라는 문장이 떠올랐을까, 바람은 몹시 부는데 비가 올 듯도 한데 비는 내리지 않았다.
“너도 깨어 있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니?” 자벌레에게 물었다. 자벌레가 대답할 리 없다. 놈은 마치 눈으로 사방 사주경계를 살피고 안전하다 느낀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허공을 건너듯 꿈틀대며 열심히 배추 잎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마치 무엇을 재듯이. 다지류인 노래기나 지네처럼 자벌레는 중간상의 다리가 없다고 했다. 가슴에 세 쌍, 배 끝에 다리가 한 쌍 있다는 것이다. 배 부분에 다리가 없으니 꼬리를 가슴까지 끌어당겨 느릿느릿 이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미친 세상에서 나를 재려고 온 거야? 나의 크기가 얼마나 되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지 못해 부끄럽다, 야. 수행자로.”
이 땅, 세상천지 가장 낮은 곳을 기어가는 자벌레 한 마리가 나를 일깨우고 있었다. 먹을 걸 찾아온 놈은 마치 형벌을 받는 듯 기어가고 있었다. 자벌레는 나방이의 유충라고 했다. 그래도 세상을 날아보자고 연신 머리며 가슴을 조아린다. 심지어 다리까지 온몸을 던져 바닥경전을 더듬다가 온 세상을 번쩍 들어 나름 그 길 위에서 생명과 평화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 나는 그런 놈을 한참 바라보다 보금자리 터전을 빼앗고 집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려 하고 있다.
하여 거친 숨을 삼키고 고개를 들어 산과 하늘, 흰 구름을 보았다. 그래도 어쩌랴, 다시 태어나도 우리 내가 너를 옮겨 놓는 그런 사이는 되지 말자, 하며 오래된 미래 속에서 행복한 미래를 위해 찾아온 자벌레들의 자리를 이소시켜 주는데 ‘스님’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래된 속가 벗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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