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_동안거 일기 · 3

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2.12.06 00:02 의견 0

스님.

응?

오롯이 하루, 아니 이틀을 제게 주실 수 있을는지요?

전화를 받고 뭐? 했다, 왜 나를 부르는데? 했다.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누가 찾아와도 잠깐 한 오 분 쯤 만나주고 빨리 보낸다. 바쁜 일도 하나 없는데.

나 장거리 운전하기 싫은데.

차를 보내겠습니다.

음, 하고 거절할 수 없음에 나는 구겨진 감탄사를 삼켰다.

놈은 독특(獨特)했다. 이제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하곤 질이 달랐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놈을 만났을 때, 음, 다르군. 그랬다. 나의 첫 느낌은 황당해서 당혹감까지 느꼈다.

내가 부름을 받아간 곳은 모처의 장례식장이었다. 지인이 돌아가셨다 했는데 영정사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눈이 놈과 닮았다. 영정 속의 노(老) 보살이 내게 왔냐는 듯 눈을 주었다.

도착해보니 놈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놈의 여동생이라며 상주가 내게 와 인사를 한다. 여전히 상대를 꿰뚫어보는 듯한 눈이었다. 어색함을 무마하려고 나는 걸망에서 목탁과 요령, 그리고 가사장삼을 주섬주섬 꺼냈다.

희한한 빈소였다. 문상객이 하나도 없었다. 영정과 위패를 올려다보았다. 문상객이 없다고 죽은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더 이상의 문상객은 오지 않을 거라 했다.

홀로 빈소를 지키는 놈의 여동생에게 물었다. 50대 중반이라지만 맨 얼굴로도 윤이 나는 피부를 갖고 있었다. 거기에다 지성이랄까, 어깨까지 치렁한 머리카락, 늙어감의 우아함이랄까. 그 아름다움에 아무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듯한 그런 기품이 보였다. 상대를 아래로 두는 듯한 말투 한 마디 한 마디에 경상도 부산 쪽 억양이 섞여 있었다. 그 깐깐함이 밴 말투에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한마디로 돈 많고 살결 고운 싸가지 없고 밥맛 없는 그런 여자들의 가소로워하는 눈빛이 내 눈을 찔렀다.

놈은 왜 안 오지?

저녁을 뭐 드시고 싶으세요?

…….

그런 입에서 돌아오는 답은 저녁 밥타령이었다.

전 장례식장에서 음식 안 먹어요. 나가요, 스님.

…그냥 여기서 먹지.

나가자니까요.

곤히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놈만 다른 게 아니라 놈의 여동생도 달랐다. 검은 상복을 벗고 검은 정장을 입은 채 손에 지갑만 들고 밖으로 나가자고 보챘다. 순간 황당함과 당혹감이 일었다. 나도 보통의 승려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하여 빈소를 비워두고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오빠의 목숨을 살리신 적이 있다고요?

내가 기우뚱 절뚝거리며 못마땅하다며 투덜대며 걷는데 물어왔다.

응, 삼십 년도 더 됐어. 산책하는데 산에 누가 쓰러져 있더라고. 들쳐 업고 병원에 갔는데 맹장이 터졌다 하더라고.

복막염 수술비가 없었는데 그것도 스님이 내주셨대매요?

그랬나? 난 다 잊어버렸는데….

어제까지는 따스했는데 오늘은 춥네요.

급격히 추워진 날씨는 영하의 찬바람이 불어왔다.

사진 | 유성문 주간

곡차 한 잔 하실래요?

나 삼 년 동안 끊었는데 오늘은 한 잔 하고 싶네.

소설 쓰신다고 들었는데?

열 살도 더 아래인 도반의 여동생은 눈을 반짝였다.

소설은 무슨 개썰을 풀다 말았지.

재밌네요, 저는… 제 캐릭터… 첫 인상은 어땠어요?

…뭐가?

그래도 한때는 꽤나 잘 나가던 작가스님이라고 해서요.

똑똑바보로 관상을 봐서는 앞을 보니 아플 팔자요, 뒤를 보니 어디보자, 뒤질 팔자라… 자식새끼가 없을 관상이로구만. 싸가지는 졸라 없어 보이고 한 마디로… 디따 밥맛 없는 이혼한 미친 또라이년쯤?

…직업은요?

아까 전화로 공판기일 변경이니 어쩌니 저쩌니 해대는 통화내용으로 봐서… 어디 보자? 판새들 눈깔은 아니고 검새쯤?

풋… 쪽집게시네요. 길바닥에 돗자리 까셔도 굶어죽진 않으시겠네요.

문상객 안 받는 결정은 누가 내린 거야?

제가요.

왜?

인간들이 싫어서요.

돌아가신 분이 너희 어머니이신 게 맞아?

예.

어떤 상황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행동과 달랐다. 중학교 2학년 중퇴하고 산에 들었으니 산중생활 50년 닳고 닳았다. 그동안 산 위와 산 아래를 들락날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야생, 이 산 저 산 이 꼭대기 저 꼭대기 위에서 살아남은 나였다.

악독한 사람도 보았고 동물적인 사람도 보았으며 바보 같은 사람들도 보았다. 웬만하면 으이그 속것들, 잡것들. 속물들, 똥물 같은 속물근성이라니, 대놓고 면전에 욕사발을 퍼붓기도 했다.

무엇이 나를 몰입하게 하는 것일까? 저 여자애의 흡입력은 뭘까? 독특함 그 이면에 내가 나도 모르게 공감하는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