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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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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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새로 들여놓은 전화기에 ‘용건만 간단히’라고 꼼꼼히 써넣은 것으로도 모자라, 다이얼 구멍에 작은 자물쇠까지 채워 놓으셨다. 우리들은 자물쇠가 채워진 다이얼을 최대한 끝까지 돌렸다가 그것이 되돌아가면서 내는 ‘좌르르’ 소리를 넋 놓아 듣기도 했고, 혹여 벨소리가 울리기라도 할라치면 서로 먼저 받겠다고 다투기까지 했다. 시절은 바뀌어 이제는 저마다 주머니 속에 전화기를 넣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어쩌다 집에 전화를 하는 경우에도 쫓기듯 용건만 내뱉고 끊어버리기 일쑤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잔정이 없는 탓이라고 타박하지만, 어찌 그것이 비단 성정 때문이기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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