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thology was therefore designed to help us to cope with the problematic human predicament. It helped to find their place in the world and their true orientation. --Karen Armstrong, A short history of myth, P.6
그러므로 신화는 문제 있는 인간의 곤경을 대처하는 데 돕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와 진정한 방향을 찾도록 도와준다. --카렌 암스토롱 <신화의 역사> 중에서
독일의 철학자 Karl Jaspers(칼 야스퍼스, 1883~1969)는 ‘Axial Age(기축시대, BC800~BC200)’에 세계적 종교인 기독교, 불교, 유교 등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무렵 신화도 함께 만들어졌을 것이다. 신화는 소설, 영화, 연극, 미술과 음악 등 모든 예술처럼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빠롤, Parole)’로서 하나의 의사소통 체계이자 하나의 메시지(傳言)이다. 인류는 신이 인간을 만들어 냈고 인간은 자연 현상에 불과한 번개, 홍수, 산불 등 자연재해를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하여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어느 나라 민족이나 다양한 형태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건국과 종말 신화 및 영웅 신화이다. 신화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변형되고 재탄생되면서 오늘날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인간은 살면서 항상 힘든 고난과 난관에 봉착하기 마련인데 연약한 인간에게는 정신적으로나 마음적으로 위안과 희망이 필요했기 때문에 신화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신화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5인의 저서를 소개한다.
◆ <Mythologies(신화론, 1957)>
프랑스의 저명한 구조주의 문학비평가인 Roland Barthes(롤랑 바르트, 1915~1980)는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자동차, 장난감, 포도주 등 52개 주제의 일상적인 삶에서 뽑아낸 신화들을 해석하여 신화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현대 신화를 묶은 본서를 1957년 출간했다. 1972년 영역(英譯) 본에는 이들 28편과 현대의 신화를 담았다. <현대 신화> 부분만 소개한다.
What is a myth, today? I shall give at the outset a first, very simple answer, which is perfectly consistent with etymology: myth is a type of speech. Of course, it is not any type: language needs special conditions in order to become myth.--P.107
오늘날의 신화란 무엇인가? 나는 서두에서 매우 간단한 답변을 할 수 있다. 신화는 말의 형태로서 어원(語源)과도 완전히 일치한다. 물론, 신화는 어느 형태도 아니다. 언어가 신화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But what must be firmly established at the start is that myth is a system of communication, that it is a message. This allows one to perceive that myth cannot possibly be an object, a concept, or an idea; it is a mode of signification, a form. --P.107
하지만 처음부터 확실하게 수립해야 할 것은 신화는 의사소통의 체계이며 메시지(전언)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화가 대상이나 개념이나 관념이 될 수 없다고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신화는 의미작용의 한 양식이며 형식이다.
For it is human history which converts reality into speech, and it alone rules the life and the death of mythical language. Ancient or not, mythology can only have an historical foundation, for myth is a type of speech chosen by history: it cannot possibly evolve from the 'nature' of things. --P.108
오직 인간의 역사만이 현실을 말로 전환할 수 있고 신화적 말의 삶과 죽음을 지배한다. 고대나 현대나 신화는 오직 역사적인 근원만을 가질 뿐이다. 왜냐하면 신화는 역사에 의해 선택된 말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결코 사물들의 ‘자연’으로부터 진화할 수 없다.
Speech of this kind is a message. It is therefore by no means confined to oral speech. It can consist of modes of writing or of representations. --P.108
이 신화적인 말이 메시지(전언)이다. 그러므로 신화는 구어로 한정되지 않는다. 신화적 말은 문자언어의 형식이나 다양한 표상들로 형성될 수 있다.
In myth, we find again the tri-dimensional pattern which I have just described: the signifier, the signified and the sign. But myth is a peculiar system, in that it is constructed from a semiological chain which existed before it: it is a second-order semiological system. That which is a sign (namely the associative total of a concept and an image) in the first system, becomes a mere signifier in the second.
--P.113
우리는 신화 안에서 이미 기술한 시니피앙((記表), 시니피에(記意), 기호로 구성된 3차적인 도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신화는 이전에 존재하는 기호학적인 연쇄로부터 출발해 축조된다는 점에서 특수한 체계이다. 신화는 이차적인 기호학적 체계인 것이다. 일차적인 체계에서 기호에 해당하던 것(다시 말해서 개념과 이미지의 연합적 총체)은 이차적인 체계에서 단지 기표가 된다.
What must always be remembered is that myth is a double system; there occurs in it a sort of ubiquity: its point of departure is constituted by the arrival of a meaning. --P.121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신화는 이중적 체계이며 그 안에 일종의 편재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신화의 출발점은 의미의 도래로 구성된다.
Motivation is necessary to the very duplicity of myth: myth plays on the analogy between meaning and form, there is no myth without motivated form. --P.125.
동기화는 신화의 이중성에 필수적인 것이다. 신화는 의미와 형식 사이의 유사성에 작용한다. 다시 말해서 동기화된 형식이 없는 신화란 없다.
The function of myth is to empty reality: it is, literally, a ceaseless flowing out, a haemorrhage, or perhaps an evaporation, in short a perceptible absence. --P.142
신화의 기능은 현실을 비우는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끝없는 유출, 출혈, 증발이며, 한마디로 말해서 감지할 수 있는 부재이다.
It is now possible to complete the semiological definition of myth in a bourgeois society: myth is depoliticized speech. --P.142
이제 우리는 신화의 기호학적인 정의를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완성할 수 있다. 신화는 탈정치화된 말이다.
Myth deprives the object of which it speaks of all History. In it, history evaporates. It is a kind of ideal servant: it prepares all things, brings them, lays them out, the master arrives, it silently disappears: all that is left for one to do is to enjoy this beautiful object without wondering where it comes from. --P.152
신화는 자신이 말하는 대상을 모든 역사에서 빼앗는다. 역사는 신화 안에서 증발해 버린다. 역사는 신화에 봉사하는 일종의 이상적인 하인이다. 역사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가져다가 정돈하면 주인인 신화가 도착하고 역사는 조용히 사라진다. 주인은 해야 할 남겨진 모든 것은 이 아름다운 대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지 않고 즐기는 것이다.
And yet, this is what we must seek: a reconciliation between reality and men, between description and explanation, between object and knowledge. --P.16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구해야만 하는 것은 이것이다. 현실과 인간, 묘사와 설명, 대상과 지식의 화해이다.
◆ <Myth and Reality(신화와 현실, 1963)>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종교학자 Mircea Eliade(미르치아 엘리아데, 1907~1985)는 신화는 현대에도 살아 있으면서 삶의 의미와 기치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샤마니즘>. <성과 속>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The actors in myths are Supernatural Beings. They are known primarily by what they did in the transcendent times of the “beginning.” Hence myths disclose their creative activity and reveal the sacredness( or simply the “supernaturalness”) --P.6
신화의 주역은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태초’의 초월적인 시기에 했던 행위로 원래 알려졌다. 그리하여 신화는 그들의 창조 활동을 밝히고 성스러운 것(또는 단순히 ‘초자연’)을 드러낸다.
Because myth relates the gesta of Supernatural Beings and the manifestation of their sacred powers, it becomes the exemplary model for all significant human activities. --P.6
신화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행적과 그들의 신성한 힘의 발현과 관련되기 때문에 모든 중요한 인간 활동에 모범이 되고 있다.
Although the actors in myths are usually Gods and Supernatural Beings, while those in tales are heroes or miraculous animals, all the actors share the common trait they do not belong to the everyday world. --P.10
신화의 주역은 보통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인 것이지만, 설화 속의 주역은 영웅이거나 불가사의한 동물인 반면에, 모든 주역들의 공통된 특성은 일상의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If the World exists, if man exists, it is because Supernatural Beings exercised creative powers in the “beginning.” But after the cosmogony and the creation of man other events occurred, and man as he is today is the direct result of those mythical events, he is constituted by those events. --P.11
세계가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태초’에 초자연적 존재가 창조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와 인간 창조 후에 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오늘의 인간은 그러한 신화적 사건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인간은 그러한 사건에 의해 구성된다.
EVERY mythical account of the origin of anything presupposes and continues the cosmogony. From the structural point of view, origin myths can be homologized with the cosmogonic myth. The creation of the World being the pre-eminent instance of creation, the cosmogony becomes the exemplary model for “creation” of every kind. --P.21
모든 것의 기원에 대한 신화적 서술은 우주창조를 전제하고 계속한다. 구조상의 관점에서 보면 기원 신화는 우주창조 신화와 동질화될 수 있다. 세계창조는 창조의 탁월한 사례로, 우주창조는 모든 종류의 창조에 모범적인 모형이 되었다.
First and most important is the fact that the origin myth frequently begins with a sketch of the cosmogony: the myth briefly summarizes the essential moments of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then goes on to relate the genealogy of the royal family or the history of the tribe or the history of the origin of sickness and remedies, and so on. --P.36
가장 중요한 사실은 기원 신화가 자주 우주창조의 스케치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신화는 세계 창조의 핵심적 순간을 요약하고, 왕가의 계통이나 종족의 역사 또는 병과 치유의 기원 등을 서술해 나간다.
In proportion as the cosmic cycle became longer, the idea of the perfection as the
beginnings tended to imply a complementary idea: that, far something genuinely new to begin, the vestige and ruins of the old must be completely destroyed. In other words, to obtain an absolute beginning, the end of a World must be total. --P.51
우주순환이 길어지는 데 따라서 태초로 완성이라는 사상은 그것을 보완하는 사상을 포함하게 되었다. 즉,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려면 오래된 것의 흔적과 폐허가 완전히 파괴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절대적인 시초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종말이 완전해야 한다.
The myths of the End of the World have certainly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mankind. They have shown that the “origin” is “movable.” For, after a certain moment, the “origin” is no longer found only in a mythical past but also in a fabulous future. --P.52
세계의 종말 신화가 인류 역사에서 확실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화는 ‘시원’이 ‘이동 가능’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어떤 시점 이후 ‘시원’은 신화적 과거뿐만 아니라 전설적 미래에도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All in all, these myths of the End of the World implying, as they do in clear or darker fashion, the re-creation of a new Universe, express the same archaic and extremely wide-spread idea of the progressive “degradation” of a Cosmos, necessitating its periodical destruction and re-creation. --P.60
대체로 새로운 우주의 재창조를 명확하거나 어두운 모양으로 암시하는 이러한 세계 종말의 신화들은 우주의 주기적인 파괴와 재창조를 필요로 하는 우주의 점진적인 ‘퇴보’라는 고대적이고 지극히 널리 퍼진 동일한 사상을 나타낸다.
FOR homo religiosus the essential precedes existence. This is as true of the man of “primitive” and Oriental societies as it is of Jew, the Christians, and the Moslem. Man is what he is today because a series of events took place ab origine. -P.92
종교적 인간에게 본질은 존재에 앞선다. 이것은 유대교, 기독교인, 이슬람교도와 마찬가지로 ‘미개인’, 동양 사회의 인간에게도 사실이다. 인간은 원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 때문에 오늘날 존재하는 것이다.
The religious ceremonies are, then, festivals of memory. “Knowing” means learning the central myth(the murder of the diving and the consequences) and endeavoring never to forget it. The real sacrilege is to forget the divine act. “Wrong,” “sin,” “sacrilege” is “not remembering” that the present form of human existence is the result of divine act. --P.107
그러므로 종교의식은 회상의 축제이다. ’안다‘는 것은 종교적 신화(신의 살해와 그 결과)를 배우고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짜 신성모독은 신의 행위를 망각하는 것이다. ‘악’, ‘죄’, ‘신성모독’은 인간존재의 현재 양식이 신의 활동의 결과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From the structural point of view, all these myths are origin myths. They reveal the origin of man’s present condition, of food plants and animals, of death, of religious institutions(puberty initiations, secret societies, blood sacrifices, etc.) and of rules of human conduct and behavior. --P.108
구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신화는 기원 신화다. 그들은 인간의 현재 조건, 식용 식물과 동물, 죽음, 종교제도(성년식, 비밀결사, 피의 희생 등), 인간 행동과 행위에 대한 규율의 기원을 밝힌다.
The man of the societies in which myth is a living thing lives in a World that, though “ in cipher” and mysterious, is “open.” The World “speak” to man, and to understand its language he needs only to know the myths and decipher the symbols. --P.141
신화가 살아 있는 사회의 인간은 ‘암호화’되고 신비스럽지만 ‘열려진’ 세계에 살고 있다. 세계는 인간에게 ‘말하고’ 있으며, 그 언어를 이해하려면 인간에게는 신화를 알고 상징을 해독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In the last analysis, it is a creativity on the plane of the religious imagination that renews traditional mythological material. This means that the role of creative personalities must have been greater than is suspected. The different specialists in the sacred, from shamans to bards, finally succeeded in imposing at least some of their imaginary visions on the respective collectivities. --P.146
요컨대, 전통적인 신화적 소재를 갱신하는 것은 종교적 상상력의 차원에서 창의력이다. 이것은 창조적 인물의 역할이 예상하는 것보다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샤먼에서 음유시인까지 성스러운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마침내 각자의 집단에게 적어도 그들의 상상적인 전망의 일부를 부과하는 데 성공했다.
The “classic” Greek myths already represent the triumph of the literary work over religious belief. Not a single Greek myth has come down to us in its cult context. We know the myth as literary and artistic “documents,” not as the sources, or expressions, of a religious experience bound up with a rite. --P.158
‘고전적’ 그리스 신화는 이미 종교적 신념에 대한 문학작품의 승리를 표상한다. 단 하나의 그리스 신화도 의례적 맥락에서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신화를 의례와 결합한 종교적 경험의 원천 또는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문헌’으로 알고 있다.
The novel does not have access to the primordial time of myths, but in so far as he tells a credible story, the novelist employs a time that is seemingly historical yet is condensed or prolonged, a time, then, that has at its command all the freedoms of imaginary worlds. --P.192
소설은 신화의 원시적 시간에 접근할 수 없지만, 믿을 만한 이야기를 말하는 한 소설가는 농축되고 연장된 시간, 즉 상상 세계의 모든 자유를 마음대로 지배하는 표면적으로는 역사적인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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