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 감소세가 지속하면서 학령인구는 줄고 있지만, 경기도 내 학교는 2곳 중 1곳이 ‘과밀학급’ 문제를 겪고 있다. 고양시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시·도의회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과밀학급 해소를 위해 토론회와 조례 개정 움직임이 이는 등 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반면 고양시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개 학년당 1학급만 있는 초등학교가 있다. 학급 평균 학생 수는 5명이고 교사당 학생 수는 3.8명에 불과하다. 고양시 학급 평균 학생 수(23.6명)의 약 1/5, 교사당 학생 수(15.5명)의 약 1/4 수준이다. 고양시 관내 학교 중 가장 규모가 작은 행주초등학교 이야기다. ‘과밀학급’ 우려가 없는 이 학교는 오히려 학년 통합수업을 걱정할 처지다.
고양시 초등학교 3곳 중 1곳은 ‘과밀학급’
고양시 초등학교 과밀학급 비율은 34.8%에 달해 경기도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 지난해 경기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고양교육지원청이 심홍순 의원(교육행정위/고양11)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고양시에서 과밀학급으로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교가 31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89개 초등학교가 있는 고양시에서 3곳 중 1곳은 과밀학급이라는 얘기다.
이에 정치권에서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으로 법제화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한준호 의원(고양시 을)이 지난 5월 초·중·고교 과밀학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학급당 학생 수는 20명 이내로 하고,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은 그 기준 범위에서 학교급별 학생 수와 지역별 교육환경 등을 고려해 적정 학생 수를 유지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과밀학급’에 가린 ‘과소학급’ 문제도 심각
이와 달리 원도심 일부 지역 학교에서는 학생 수 부족으로 ‘과소학급’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학교알리미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신원초, 원중초, 호곡초, 양일초, 동산초 등은 50개 학급 안팎이고 학생 수도 1,200~1,400여 명에 이른다. 반면 원도심 소재 대곡초, 성석초, 용두초, 행주초 등은 10개 학급 미만에 학생 수도 100명이 넘지 않는다.
앞선 50개 학급 이상 학교 학급 평균 학생 수가 25.8명인데 반해 10개 학급 미만 학교 학급 평균 학생 수는 9.8명으로 채 10명을 넘지 않는다.
지속적인 도시개발로 신도심을 중심으로 과밀학급 문제가 발생하는 반면 원도심 일원의 공동화 현상으로 과소학급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 셈이다.
과소학급 문제가 대두된 4개 학교 모두 학급수가 7개 이하에 전교생이 30~90명 정도밖에 되지 않고 인구 유입도 많지 않아 학생 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거주지에 따라 학교가 배정되는 만큼 인위적인 학생 수 조정도 어려워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폐교나 학교 통폐합까지 검토해야 할 처지다.
‘작은학교’ 살리는 대안 공동학구제 주목
문제는 폐교나 학교 통폐합 방안은 학교 동문회, 지역주민 의견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합의가 필요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들도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작은학교’를 살리는 대안으로 공동학구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역에 따라 공동학구제, 자유학구제, 광역학구제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큰 학교 학구 학생이 작은 학교 학구로 주소 이전 없이 전학 또는 입학이 가능한 학구제다. 다만 작은 학교 학구 내 학생이 큰 학교로 전·입학할 수는 없다.
고양시도 2022학년도부터 공동학구제를 시행하고 있다. 학구를 일방향으로 조정하는 ‘제한적 공동학구제’ 형태다. 무조건 통폐합 이후에도 적정 규모의 학생 수 확보가 어렵다는 전례로 미뤄 바람직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제한적 공동학구제 적용을 받는 학교는 용두초와 행주초 2개교다. 용두초는 총 7개 학급에 전교생은 68명이다. 행주초는 더 작다. 1개 학년에 1개 학급, 총 6개 학급에 학생 수는 30명에 불과하다. 이들 학교는 ‘작은 학교’ 강점을 살린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해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 교육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두초는 수영, 스케이트 등 계절 스포츠 체험교육을 무료로 지원하고 생태환경교육과 주제별 체험학습을 진행한다. 또 1인 1악기 등 문화예술 교육을 강화하고 나눔교육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행주초는 기초세움 프로그램을 담임교사 책임지도제로 운영한다. 학년별 생태학습장을 운영하고 1인 1상자 텃밭을 직접 가꾼다. 또 전교생 돌봄교실과 코딩, 놀이체육 등 방과 후 수업도 무료로 지원한다. 특히 고양시 초등학교로는 유일하게 IB관심학교에 지정돼 탐구기반학습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고양시에서 유일한 특성화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학교 내에 골프연습장을 마련해 빠르면 올해 연말부터 골프스쿨을 운영할 예정이다.
고양시, 행주초 통학버스 예산 지원 거절
제한적 공동학구제는 학교 선택권 확대와 교육만족도 향상을 기대할 수 있고 학습환경 개선과 양질의 학습경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 또한 많다. 학생 통학거리 증가와 교직원 인사이동 등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행주초 통학버스 지원 논란’에서 제한적 공동학구제를 바라보는 고양시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행주초는 고양시에서 가장 작은 학교다. 올해 4명이 입학한 행주초는 전교생이 3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신입생 중 한 명은 1학기 중간에 전학해 현재는 29명으로 줄었다.
행주산성 자락에 있는 학교는 통학환경이 열악하다. 행주산성 진입로에서 학교까지 대부분 차도와 보도 구분이 없다. 학교 정문과 후문 주변도 마찬가지다. 또 학교 주변으로 면세점과 주류 유통업체 및 창고, 소규모 공장 등이 난립해 있어 관광객을 태운 대형버스와 대형트럭의 통행이 빈번한 지역이다.
이에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통학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 교육청과 고양시에 통학버스 운영지원을 요청했다.
학교 측 관계자에 따르면 “등하굣길 통학로가 위험에 노출돼 있고 면세점 및 유통업체, 공장 등 주변 환경도 열악한 실정”이라면서 “공동학구제로 학군지가 아닌 고양시 전역에서 통학하는 아이들도 많아 통학버스가 필요하다”라고 지원 이유를 밝혔다.
학교는 연간 통학버스 운영에 필요한 예산 약 8,000만 원을 고양교육지원청과 고양시에 각각 지원 신청했고 이에 고양교육지원청은 예산의 50%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양시는 통학버스 운영 지원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학교 측에 통보했다.
고양시, “소수를 위한 통학버스 지원 어려워”
고양시 관계자는 “통학버스 지원은 통학거리가 1.5Km 이상 돼야 가능하다”라고 전제하고 “제한적 공동학구제가 적용되는 행주초는 통학거리가 1.5Km가 넘는 학군지 외 지역에서 통학하는 학생이 절반가량인 15명 정도로 파악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도에 통학 거리가 멀어 통학버스 지원을 고려해야 할 학교가 2개교가 더 있다. 시 예산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행주초를 선택한 학군지 외 지역 학생 15명을 위해 통학버스 예산을 책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면서 “열악한 통학로는 통학로 정비사업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으로 통학버스 지원과는 별개의 건”이라고 밝혔다.
결국, 통학거리가 1.5Km 이상 되는 학생이 있지만 다른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여서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가 ‘통학거리 1.5Km’ 이상을 통학버스 지원 근거로 삼은 규정은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이다.
규칙 제89조 ①항 11을 보면 “초등학교는 학생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통학할 수 있도록 다른 공공시설의 이용관계를 고려하여야 하며, 통학거리는 1천5백미터 이내로 할 것. 다만, 도시지역외의 지역에 설치하는 초등학교중 학생수의 확보가 어려운 경우에는 학생수가 학년당 1개 학급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까지 통학거리를 확대할 수 있으나, 통학을 위한 교통수단의 이용가능성을 고려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산 부족과 지원 비효율성을 내세운 고양시가 제대로 행주초 주변 ‘다른 공공시설의 이용관계를 고려’했는지 또한 구도심과 신도심 교육 불균형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 거리, 학생 수 등 경제 논리만을 내세우는 것이 타당한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경제 논리 넘어 교육문제로 접근해야
고양시와 이웃하고 있는 인근 지역을 살펴보면 ‘작은학교 살리기’에 적극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파주시는 올해 들어 ‘학생맞춤형 통학차량’을 확대 지원하고 있다. ‘파주형 작은 학교’(9학급 이하이고 학생 수 300명 이하 학교) 11개교 4억5,500만 원, 안전확보 및 원거리 학교 4개교 2억 원으로 전년 대비 62%를 증액해 총 15개교에 시비 6억5,500만 원을 편성하고 각 학교에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공동학구인 와석초, 지산초, 운정초 통학버스에 1억5,000만 원, 오랜 전통을 가진 작은 학교로의 유입을 통해 도심지의 과대·과밀 학급의 문제를 해소하고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11개교에 4억5,500만 원을 지원한다.
김포시는 관내 통학차량 지원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 확대하고 지원학교도 늘렸다. 김포교육지원청이 고촌중 등 4개 교를 2023학년도 통학 지원 대상교로 확정했고 예산이 확보된 고촌중과 양곡중 2개 학교가 3월부터 통학차량 운행을 시작했다. 고촌중 89명, 양곡중 65명으로 각각의 차량운행비는 경기도교육청과 김포시가 50%씩 부담하게 된다.
파주나 김포와 달리 고양시는 ‘작은학교’ 행주초 통학버스 지원 불가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행주초 측은 “큰 학교에 비해 15명이 상대적으로 소수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 학교 전교생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라면서 “공동학구제로 고양시 전역에서 학생들이 찾아오고 있는데 학부모 대부분 통학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 통학버스 운행이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행주초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고양시의 지원 불가 입장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백석동에서 통학하는 한 학부모는 “제한적 공동학구제로 고양시 전역이 학구로 지정돼 있어 원거리 통학생이 생길 수 밖에 없다”라면서 “학구 밖 원거리 통학을 감수한 학부모의 자의적 선택이라는 점과 이용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를 들어 지원할 수 없다는 시의 입장은 전형적인 ‘경제논리’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과대·과밀학습 해소, 원도심과 신도심 학교 간 불균형 해소 등 확장 여지가 많다며 도입한 제한적 공동학구제 의미가 무색해지는 모습이다. 이에 지자체와 교육 당국 그리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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