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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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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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면 밥값을 물어보는 사숙, 노장이 계셨다.
오늘은 못했습니다.
그럼 내일은 꼭 해라.
네, 약속하겠습니다.
물음에 울렁거렸다. 지금이야 가난해도 밥 굶는 사람들이 몇 안되지만 그때는 다들 살림살이가 딱하고 어려워 말 그대로 굶기를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절집도 마찬가지였다.
이산저산 깨달음을 찾아 날품팔이처럼 떠도는데 노장이 어느날 내게 물었다.
야야, 겉똑똑이. 밥은 먹고 다니냐?
.......
발우는 씼었어? 한소식 했냐고?
안간힘을 쏟고 있기는한데.......아직요.
시줏밥은 맨날 처먹고 다니며 언제까지 찾고 또 찾아 헤매고만 다닐 낀데? 야, 이 밥벌레 같은 놈아.
왜 저만 갖고 그러세요?
심장이 뜨거워졌다.
다른 놈들은 부처, 모다 부처가 없는 것들이니깐. 그래 니놈은 내 조카놈이니깐. 그나저나 니놈은 언제 한소식 해가 부처자리를 잡을 낀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눈 뜨고 싶었다. 한번 감으면 다시 뜨지 못할 눈. 그날 나는 해우소로 끌려가 '밥이 똥이다. 똥이 바로 공양이다.'라는 말씀을 귀아프게 들으며 사숙과 함께 똥지게를 져야만 했다.
절집에서 공양(供養)이란 부처님 앞에 음식물이나 재물 등을 바치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또한, 승려가 하루 세끼 음식을 먹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마다, 오관게를 외우는데,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삼아
진리를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어딜 가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서 있는 곳마다 참이 없다면, 진리를 개진하지 못한다면 모두 절밥도둑놈, 뜨내기라는 거였다. 뜨내기는 그저 한탕이나 하려들고 돈많은 보살탱이 뒤꽁무늬만 쫓아다닌다는 거였다.
하여 크으, 나그네 되기 정말 힘드네요, 했는데, 노장은 바람으로 오셔서 바람으로 가셨는데 나는 부처는 되지 못하고 중생이 되어 오늘도 타박타박 '그래도 오늘은 시줏밥값을 했지?'하는데,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 한마리 기척에 놀라 푸드덕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새가 날아간 나뭇가지가 허공속에 한참이나 흔들렸다.
어디 절집에서만 밥벌이, 밥값하기 힘들겠는가.
부처로 구경(究竟)을 삼지 마라
내가 보기에는 부처도 한낱 냄새나는 존재요
보살과 성인은 목에 씌우는 형틀,
그 모두 너를 잡아매는 것들이라,
하시던 노장의 허어~ 나이 칠십이 되도록 아직도 헤매고 다니느냐? 이제 죽음이 코앞에 있는데 얼마나 더 헤매겠다는 것이냐? 네 이노옴, 하시며 노장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제대로 밥값도 하지 못하는 놈, 하시며 일갈하시는 것만 같다.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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