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창포길 통신】 어느 치과 원장님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12.23 09:00 의견 0

치과의사 “이제 치료는 다 끝났습니다. 다음 달에 오시면 제가 꼼꼼히 체크해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수고는 자기가 해놓고 뭘!)

사강환자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튼튼한 이를 갖게 됐습니다.”(고기 먹으러 가야징.)

치과의사 “그런데… 저….”

사강환자 “예?”

치과의사 “제가 해드린 것보다 훨씬 말씀을 잘해주셔서, 환자분들이 많이….”

사강환자 “아! 저는 제가 느낀 대로, 이 치과가 좋다고 말한 죄밖에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치과의사 “하하!”

옆에 서 있던 치위생사가 하하! 하고 더 크게 웃었다. 순간 의사 선생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분은 왜 얼굴이 빨개졌지? 참 수줍음 많이 타는 사람이네.)

8월 말부터 시작한 치과치료 대장정이 끝났다. 사실은 지난주에 끝났는데, 오늘 체크 받으러 오라고 해서 들른 참이었다. 그동안 쇠나사(남들은 임플란트라고 하더라만) 두 개를 박았고, 가짜 이(크라운이라고 하더라만) 두 개를 새로 씌웠고, 여기저기 치료를 병행했다. 치료 날짜를 효율적으로 잘 배분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왜 내게 얼굴까지 붉게 물들이면서 감사 인사를 하느냐 하면, 내가 그곳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찾아간 환자가 몇 분 있었기 때문이다. 한 분은 치료에 대해 물어보길래 내가 직접 모시고 갔고, 다른 한 분은 다른 곳에서 무척 비싸게 치료를 받는다길래 그곳을 소개하면서 치과에 전화로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치과에서 만났다.


그분에게는 지금도 미안하다. 하루는 소파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여성 한 분이 다가와서 인사했다.

여성 “저… 이호준 선생님이시지요?”

사강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예, 그런데, 누구…?”

여성 “아! 저 페친이에요. 선생님 이 치과 다니신다길래, 일부러 찾아왔어요.”(어느 치과라고 한 적은 없고, 내가 올린 사진에 치과 이름이 있었던 모양이다. 수사관 출신이신가?)

아아! 이런 일이. 마스크를 썼는데 어떻게 알아봤지? 마구 감동하는데, 이름도 물어보기 전에 그분이 먼저 치료를 받으러 들어갔고, 나는 금방 끝나서 먼저 나오게 됐다. 인사를 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데…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상담실장에게 “저분 좀 잘 챙겨주시고요. 제가 인사를 못 드리고 가서 죄송해 하더라고 전해주세요.” 부탁하고 나왔다. 그 뒤로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부채의식이 남아 있다. 치료는 잘 하셨는지 원.

병원에서도 이런저런 상황을 아니까, 내가 굴러온 떡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환자를 마구 새끼 치는 환자라니. 그래서가 아니라, 의사 선생님은 굉장히 신뢰가 가는 분이었다. 환자가 무서워할까봐 조곤조곤 설명을 잘 해준다. 한번은 ‘진상’ 환자와 대화하는 것을 봤는데, 열 번 가까이 똑같은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날 그 곤욕을 치르고 난 뒤 다음 환자가 나였는데, 내게 와서 정중하게 사과했다.

의사 “많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강 “저야 그냥 기다리면 되지만, 진짜 힘든 건 선생님이지요.”

의사 얼굴이 마스크 속에서 환해졌다. 그래서 그랬나? 그 뒤로는 손길이 더욱 부드러워졌다. 물론 남자 의사다. 이 의사 선생님이 맘에 드는 건, 치위생사들을 대하는 태도다. 늘 극존대를 하는데, 허례가 아니라 진심이 느껴진다.(너무 칭찬만 하나?) 그리고 치료하면서 더 좋았던 거는 술 마시지 말라고 한 기간이 고작 일주일도 안 됐다. 날마다 시아버지 걱정하는 우리 집 딸 같은 며느리는 무척 싫어했다.

그런저런 사연 속에서 치과 치료를 잘 마쳤다. 며칠 지났는데,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까지는 꽤 만족스럽다. 그동안 개점휴업 상태이던 왼쪽으로 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암튼, 지금 나는 최첨단 소재로 몸 구성을 마친 사이보그처럼 행복하다. 혹시, 가까이 살면서 그 치과에 가고 싶은 분은 메시지 주시라. 내가 소개해서 왔다고 하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다 홍보 글이라고 돌 맞겠는데? 절대 아니다. 내가 챙긴 거라고는, 그 치과에서 치료가 끝나면 나눠주는 칫솔 하나, 다섯 개짜리 치간칫솔 세트밖에 없다. 원래 나는 나를 챙기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버스를 버리고 걸어서 돌아오는 길, 한겨울의 창백한 햇살이 자꾸 뒷덜미를 어루만졌다.

“알았어. 알았다구! 다음에 나올 땐 꼭 목도리 두를 게.”

집에 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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