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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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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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에 앉아 쓴다.
점심 먹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쯤 걷는다. 날마다 하는 일이니 요즘 흔한 말로 '루틴'이다. 들판을 걷기도 하고 산길을 걷기도 한다. 그날그날 마음 내키는 대로다. 내게는 빼앗길 수 없는 행복이다.
오늘은 휴일이라 산에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들판을 걸었다. 버들개지가 나왔는지 눈인사라도 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논길을 크게 한 바퀴 돌고 큰길로 나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저만치서 자전거 몇 대가 온다. 하나, 둘 , 셋… 다섯 대다. 나도 자전거를 좋아하는지라, 눈이 저절로 바퀴를 따라 돈다. 이제 봄이 왔으니 걷는 대신 자전거를 탈까?
생각을 여미기도 전에 선두 자전거가 내 앞까지 오더니 꾸벅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온 듯 밝다. 얼떨결에 나도 인사한다. 그가 환하게 웃는다. 아카시아 꽃을 잎에 물기라도 한 듯 치열이 희고 곱다. 스물 둘 셋쯤 됐을까? 청춘의 미소는 저렇게 빛나는구나. 두 번째 친구도, 세 번째 친구도 약속이나 한 듯 내게 인사한다. 그런데 왜 내게 인사를? 저 친구들과 내가 서로 알 리가 없는데?
세 번째 친구가 인사할 때야 외국인이라는 걸 알아챈다. 이 지역에 유난히 많은 외국인 근로자일 거라고 짐작한다. 둔감한 아저씨 같으니. 헬멧을 쓴 바람에 금방 못 알아본 것이었다. 이 나라 말이 유창한 것도 한몫했다. 가만? 그러니까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 젊은이들이 내게 인사를 한 거구나. 머리와 수염이 하얀 아저씨가 길에 서 있으니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감동이었다. 요즘 어느 젊은이가 낯 모르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한단 말인가.
또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감동한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룸메이트에게 "제주서 온 빨갱이" "돼지 XX" 같은 언어폭력을 지속적으로 저질러 상대방이 극단적 시도까지 하도록 했다는 고등학생, 그리고 소위 명문 대학에 당당하게 들어가 잘 다닌다는 그 아이(피해자 청춘이야 망가지든 말든)가, 길에서 만난 나 같은 허름한 아저씨에게 인사를 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또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대법원까지 가면서 아이를 변명했다는 검사 아비가 아들에게 그런 예절을 가르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아마 나 같은 추레한 사람을 보면 '저런 인간들은 왜 살고 있을까?' 생각하지나 않을까 싶다.
외국인이라고, 남의 나라에 일하러 왔다고 무시하고 손찌검까지 하는 고용주가 이제는 모두 사라졌겠지? 저렇게 밝고 당당하고 인사성까지 좋은 걸 보면, 저 친구들이 일하는(근로자라는 내 예측이 맞다면) 곳 사장님은 좋은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은 어른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한때 '사장님 나빠요'라는 코미디가 있었지? 그런 '나쁜' 사장님은 없겠지만, 차별과 편견의 찌꺼기가 조금이라도 남았으면 몽땅 버리자.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살면 '빨갱이니' '돼지'니 하는 아이들이 자꾸 나올 수밖에 없다. 단일민족? 우리끼리? 개뿔이다.
어제는 너무 어이없고 충격적인 죽음 앞에 밤새 눈물의 통음을 했다. 오늘도 가시지 않는 슬픔 앞에 비틀거렸더니, 산책길에 만난 청년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젊은이들이여. 상처 하나 없이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 품으로 돌아가길. 몸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한 나라였다고 기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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