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령은, 나 너 --- 니나노 오오오 에 --- 에허에허 에헤에야아
에 --- 어허 어 에허 이여 허루 산이로구나. 에 ---, 로 시작한다.
그러다,
팔도(八道)로 돌아 유산객(遊山客)이요, 여덟도(-道) 명산(名山), 현계산 제일봉(第一峯)에 봉황(鳳凰)이 춤을 추고, 한강수(漢 江水) 깊은 물에 용마(龍馬) 하도(河圖) 낳았단 말(인)가?
에- 어디히-- 이에 어허에헤야 에 허 에헤이여 어루 산이로구나, 한다.
지난 저녁에 산속이 꾸물거리더니 비가 내리더니 새벽까지 비가 내렸다.
나도 꼬~ 부랑 산에서 꼬박 염불(念佛)하며 놀았다. 꼬부랑거리며 산에서 살자 함은 외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유배라 할까, 고립무원. 외톨이처럼 살아온 생이었다. 무엇이 어긋났던가. 애초에 산에 들어와 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요?❞
두근두근 가슴이 울렁거렸다
마음은 어디로 튈 지 몰라 길들이기 어렵고, 미묘하고 변덕스러웠다.
❝어찌 살지 모르겠어요.❞
❝왜 못살아. 다 살아져. 모든 건 다 마음이 지어낸 거야. 너도 잘 살게 될 거야. 내 늙어보니 내가 원하지 않던 인연들도 닥치니까, 닥치는 대로 그 인연들을 모두 거쳐가는 가는 수 밖에 없더라.❞
❝.......❞
❝힘 있을 때 사는 거야. 힘을 잃으면 삶도 사라지게 돼.❞
❝어떻게 하면 바다로 갈 수 있는지요? 저는 산보다는 바다가 더 좋던데. ❞
❝네가 서 있는 곳이 바로 바다란다. 화엄의 바다라고 저기 파도소리 들리지 않느냐?❞
❝....네?❞
❝행복도 슬픔도 희망도 포기하고 살아보라고. 나름 산이라는 바다에 사는 맛이 있을 테니까. 받아들여야 한단다. 그런데 추석선물을 하고 싶은데, 뭘 먹고 싶으냐?❞
❝.....치킨이요.❞
내 말에 노스님이 어이없다는 양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이 굽이치자 마음에 물결이 쳤다. 노사는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마음으로 살라고 했다.
❝그래도 저는 바다로 가고 싶어요.❞
❝욕망은 욕망을 낳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 욕망 없이 어찌 살 수 있겠느냐, 아마 너는 바다로 가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냥 받아들이고 가볍게 살아라.❞
❝가볍게, 자유로이?❞
그때는 그 뜻을 몰랐다. 행복, 자유, 모험이 속박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슬프고 안타깝고 아쉽기만한 날들이었다.
어릴적 머물던 관음암은 그리 큰 암자가 아니었다.
산신각을 돌아 조금만 내려오면 개울이 있었다. 그곳에 커다란 너럭 바위가 있었다. 드러 누우면 위로는 큰 밤나무가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
다람쥐가 많았다. 칡넝쿨, 보랏빛 칡꽃 위로 다람쥐들이 나 잡아봐라, 하며 팔짝팔짝 뛰어 다녔다. 누워 있으면 도랑물들이 모이는 개울에는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고 참새 산까치 뻐꾸기 극락새 온갖 새들이 나를 기웃거렸다.
더우면 텀벙, 물속으로 몸을 던졌고 비록 오 미터 육 미터지만 헤엄을 쳐 왔다리 갔다리 했다.
그러면 공양간 노보살님과 청양보살님이 점심공양 뒷설거지를 끝내고 고구마 삶은 걸 가지고 내려 오셨다.
청양보살님은 남편죽꼬 자석죽꼬, 내 혼자서 어예 속가에 사꼬, 또 누굴 죽일라꼬 하시던 꼭 엄마같던 보살님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의 공양을 책임져주시던. 나 또한 어머니처럼 모시던.
고구마를 먹는데 다람쥐들이 꼬리를 위 아래로 흔들며 보았다. 앞 다리를 싹싹 비비면서 코와 입술을 실룩거렸다. 청양보살님이 먹던 고구마를 던져주면 쉬지않고 움찔거리던 다람쥐들이 잽싸게 달려와 고구마를 물고 달아났다. 그러면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물에서 나와야 했다.
노보살님과 청양보살님이 몸을 씻을 차례였던 것이다.
내가 지금 사는 곳 입구에도 개울이 있고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었다. 나는 지날 때마다 그렇게 어렸던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무 배추 열무 얼갈이 가을당근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거두다 보면 한 해가 간다❞ 하시던 노스님.
❝농작물들을 가꾸다 보면 내가 살았구나❞, 할 끼다.
심전경작(心田耕作)이라 했던가. 심지(心地)에 씨앗을 뿌리는 봄이면 봄대로 심소(心所)에서 거두는가을이면 가을대로 좋았다.
❝가볍게, 가볍게. 그리고 자유로이.❞
노스님이 나에게 해준 최고의 조언이다. 그해 추석 전날, 장보러 갔다 온 노보살님과 청양보살님이 절 밑 마을에서 나를 불렀다.
아니, 노스님이 장에 간 노보살 마중을 가라 해서 내려가보니 노보살과 청양보살님이 너럭바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자, 네모난 종이상자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칠성사이다와 함께 치킨, 양념 통닭이 들어 있었다.
힘들고 고단할 때면 나는 그 통닭을 생각하며 버티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왜 닭다리, 닭날개 하나를 청양보살님과 노보살님, 그리고 노스님에게 내밀지 못했을까? 저녁을 잔뜩 먹었는데도 내 혼자 허겁지겁 그 치킨을 뜯고 있던 모습이라니.
누가 이생을 업전(業田), 업의 밭이라 했던가. 그래도 나는 늘 복의 밭, 복전(福田)이라 했다.
뿌린대로 거둔단다. 살아 살아 그 날카로운 아픔으로 벼랑 절벽을 살아 잃어버리고 효도를 하려 해도 이미 늦어버렸지만 살자고 떠듬거려보지만 두 눈은 쓰라리고 쇠약해진 몸뚱이 몸뚱아리 어지럽지만 살자, 살아 같이 더 살자며 그때 그시절 추석 전날 먹었던 통닭맛을 생각하면 기운이 돋곤했다.
여튼, 지금 나는 노스님이 살아계시다면 통닭 삼십 마리도 넘게 사드릴 수도 있는데. 노스님, 노보살, 청양보살은 추억 속에만 있다.
어찌되었든, 추억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꼬부랑거리다 돌아보니, 콧잔등이 찡해졌다. 그러나 운명은 이미 선택 이전의 것이었다.
어떤 결과가 있으려면 원인이 있어야 한다. 올 해도 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노스님의 대자대비, 갑자기 가슴 속에서 그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온다.
❝고마워 할 줄 모르면 그건 사람이 아닌 거여. 사람이 부처라고.❞
인즉시불(人卽是佛)이라, 그러니 내 생에 여한은 없다. 누가 이길을 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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