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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작성자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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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선크림과 팔토시
이번 가족 모임은 순전히 며느리의 ‘강압적’ 소집이었다. 다른 가족 구성원의 의사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날짜와 장소, 그리고 뭘 먹을지까지 결정해서(그리고 준비해서) 통보하다시피 했다. 시아버지인 나, 시어머니인 아내, 남편인 큰아들, 시동생인 작은아들, 그리고 제 아들인 손자까지, 그녀의 지시 대로 입만 준비하면 됐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3.07.28 09:52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이쁜이할머니와 머위
박사골 이쁜이할머니댁의 기울어가는 시멘트 담장 밑이 소란스럽다. 갓 올라온 머윗잎들이 올망졸망 해바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지바른 곳이라 다른 곳보다 빨리 자란 모양이다. 냉이를 캐다 말고, 치밀어 오르는 욕심에 웃자란 녀석으로 몇 잎 뜯었다. 묏등 아래 언덕에서 막 돋아나는 씀바귀까지 몇 뿌리 캔 뒤 돌아오다가 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3.03.31 00:2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가스요금 고지서를 받던 날
매달 이맘때쯤 오는 게 있다. 오늘도 우편함에는 어김없이 올 게 와 있었다. '2023년 03월 도시가스 지로영수증'가스요금 통지서다.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던 것보다 더 설레는 순간이다. 지난달은 좀 더 춥게 살았으니 가스비도 내려갔겠지? 화투장 까는 노름꾼 사내의 심정으로 천천히 액수를 확인한다. 54,860원. 애개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3.03.17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차별과 편견의 찌꺼기
논둑에 앉아 쓴다.점심 먹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쯤 걷는다. 날마다 하는 일이니 요즘 흔한 말로 '루틴'이다. 들판을 걷기도 하고 산길을 걷기도 한다. 그날그날 마음 내키는 대로다. 내게는 빼앗길 수 없는 행복이다. 오늘은 휴일이라 산에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들판을 걸었다. 버들개지가 나왔는지 눈인사라도 하려는 마음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3.03.03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어느 치과 원장님
치과의사 “이제 치료는 다 끝났습니다. 다음 달에 오시면 제가 꼼꼼히 체크해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수고는 자기가 해놓고 뭘!)사강환자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튼튼한 이를 갖게 됐습니다.”(고기 먹으러 가야징.) 치과의사 “그런데… 저….” 사강환자 “예?” 치과의사 “제가 해드린 것보다 훨씬 말씀을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12.23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존재로부터 훌쩍 도망치고 싶을 만큼 우울한 날이었다. 서너 시간째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여덟 시쯤 울음기를 꾸역꾸역 삼키는 게 역력한 한 사내가 전화를 했다. 처음 보는 번호,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경기도 별내에 산다고 했다.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불행했던 출생과 불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11.18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아내의 집들이
영하의 날씨지만 하늘은 맑다. 농익은 햇살이 고봉으로 퍼 담은 쌀밥처럼 푸짐하다. 이렇게 마음 부른 날은 창문 앞의 고양이처럼 나른해진다. 좋은 징조다. 짐을 싸기 전에 다시 한번 메모를 살핀다.호박/감자/찧은마늘/다시팩2/파/돼지갈비/된장/알타리김치/소주(내가 마실 것)… 건화 신발/빨아둔 옷/헐크 후크(못 대신 벽에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11.11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예비 성범죄자가 된 아침
아침 산책길. 저 앞에 여자 아이 하나가 나풀나풀 걸어간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됐을까? 어깨에 건 가방이 앙증맞다. 끝내 견고할 것 같던 평화는 내 둔탁한 발자국 소리에 순식간에 깨지고 만다. 아이가 살짝 돌아서서 곁눈질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외로 꼰다. 그리고 담장에 바짝 붙어 서서 ‘이 남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10.16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아내의 눈물
며칠, 세상의 오지를 떠돌다 돌아왔다. 허리 굽은 소나무에게 길을 묻고, 산과 강을 뒤져 세월이 묻어둔 이야기를 캐내는 일은 평생을 반복해도 쉽지 않다. 드디어 겨울시즌이 시작됐다. 난 늘 그렇듯 시간을 한 계절쯤 앞질러 살아야 한다.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책 한 권 만들어 납품하는 일은 행복하면서도 고단하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10.07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어느 사내의 선물
낯선 번호의 전화는 여전히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더구나 몸도 마음도 그리 편치 않은 시간에 전화기를 쥐고 흔드는 낯선 번호에 잠시 망연해진다. 그래도 ‘휴대전화’ 번호가 찍힌 전화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찧은 쌀에 뉘 나듯 가끔 원고 청탁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조금 망설이다가 수신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09.30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오토바이 노인과 봄보리 청년
화살비처럼 쏟아지는 뙤약볕을 고스란히 이고 치과에 가는 길이었다.* 9월이라고, 그래서 가을이 왔다고 떠들어도 한낮의 햇살은 한여름 못지않게 날카롭고 뜨겁다. 그렇다고 버스를 탈 내가 아니다.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몇 정거장 정도는 걸어가는 게 훨씬 행복하다.목적지가 저만치 보일 무렵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춰 서서 생각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09.23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주인집 할머니의 추석선물
나는 김을 사랑한다. 金씨 성을 가진 한 여인을 사랑한다는 건 아니고 먹는 김 이야기다. 상에 올릴만한 찬이 없을 때, 그래도 어떻게라도 밥을 넘겨야 할 때, 봉지 김 하나는 얼마나 큰 위안인지. 한마디로 나 같은 독거청년이 생존을 이어가는데 크나큰 은총이라는 뜻이다. 코로나로 빈사 상태에서 허우적거릴 때, 아무 음식도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09.16 09:00
꽃창포길 통신
【꽃창포길 통신】 낮 천국, 밤 지옥
작업실을 옮긴 건 코로나의 후유증이 극에 달한 날이었다. 도와주겠다고 와서 짐을 풀던 큰아이가 뜬금없이 물었다. “아부지는 산이 좋아요? 바다가 좋아요?”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같은 옛말과는 상관없이, 제 동생과 휴가 이야기를 하던 끝에 물은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쓴웃음이나 깨물고 말았지만, 질문의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09.09 09:00
꽃창포길 통신
【사는 이야기】 젊은 환경미화원의 미소
새벽 어스름을 디디며 산에 올라본 사람만이, 낮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머지않아 매미울음이 가벼워질 거라는 것도 안다. 이 더위도 곧 쫓겨갈 게 틀림없다. ‘아무리 더워 봐라. 내가 에어컨을 켜나.’ 다시 한번 결심을 다진다. 작업실에서 나와 큰 길가로 나서다가 그 청년을 보았다. 청소원(공식이름은 환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09.02 09:00
꽃창포길 통신
【사는 이야기】 내게도 애인이 생겼다
아침을 낳는 물안개가 보고싶어 새벽강에 갔다. 거기서 돌 하나를 만났다. 어제 일이다. 돌을 줍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수많은 돌 중 하나가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분명 내게 말을 걸었다. 엎드려 그 돌을 손에 쥐는 순간, 가슴이 서늘했다. 아니, 찡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수사적으로 찡한 게 아니라, 실제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08.26 09:00
꽃창포길 통신
【사는 이야기】 배달하는 노인
‘집요’의 승리였다. 금융권이나 카드회사라고 판단되는 전화는 안 받는다. 대부분 “돈 좀 가져가시라”는 전화이기 때문이다. 은행에 부채가 좀 있다 보니 내가 금융권의 ‘호구’가 되었다. 나는 남의 돈이라면 지긋지긋한 사람이라 돈 빌려 가라는 소리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 번호의 전화는 무려 5일에 걸쳐서 계속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08.19 09:00
꽃창포길 통신
【사는 이야기】 어느 후배
불길한 전화는 벨소리부터 불길하기 마련이다. 민감한 사람에게는 진동도 마찬가지다. 어제 아침의 그 전화가 그랬다. 후배 J였다."형님, 어디세요?" "어디긴? 작업실이지." 이 대답부터 뭔가 잘못된 것이었다. 5년 전에 예약된 남극 여행 중이라고 했어야는데. "오늘 저녁에 어디 안 가시지요?" 이 순간이 비극에서 도망칠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08.12 09:00
꽃창포길 통신
【사는 이야기】 아들과 보낸 한나절
“그러지 말고 한 치수 큰 거로 바지 하나 더 사. 혹시 살이 더 찔지도 모르잖아.”“그럴까요? 그럼 추가로 사는 바지는 제가 계산할게요.” “됐어. 이 녀석아. 아버지가 알아서 할 테니 옷이나 잘 챙겨.” 낼모레부터 제가 원하던 직장으로 출근하는 큰아이를 파주로 불러서 양복을 한 벌 사 입혔다. 뭔가 생색나는 축하를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22.08.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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