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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풍경
【길 위의 풍경】일해백리(一害百利)
“값이 이 모양인데 어디 마늘농사 짓겠나! 차라리 때려치우는 게 속이라도 편하지….” 지난 1일, 경남 창녕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서 열린 건마늘 초매식. 첫 경매부터 농부들의 탄식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당 평균 5,395원이던 대서종 마늘 상품이 3,100원에 경락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반토막’ 수준
유성문 주간
2023.07.06 00:36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세발자전거
스핑크스는 묻는다. “아침에는 네 발로, 한낮에는 두 발로, 저녁이면 세 발로 다니는 동물은 무엇인가?” 네 발로 기던 아침을 지나, 두 발로 뛰던 한낮, 그리고 이제는 세 발로 걸어야 할 저녁을 앞두고 있다. 돌아보니 아득한 세월이었다. 이번에는 어둑한 골목 한쪽에 버려진 세발자전거가 내게 묻는다. “네 발로, 두 발로
유성문 주간
2023.06.29 01:01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실로폰
나의 도벽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전방 한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아버지의 눈길이 소홀해진 틈을 타 돈통에서 슬쩍 한 움큼의 돈을 움켜쥐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나는 훔친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냉택없는 고민에 시달려야 했다. 책방을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극장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춰
유성문 주간
2023.06.22 09:00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비닐우산
장마는 함석지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후두둑…’ 불길한 전주가 울리면 서둘러 온갖 깡통과 세숫대야, 심지어 찌그러진 양은냄비까지 동원해 을씨년스런 화음으로 답해야 했다. 새우잠 끝에 아침이 오면, 이번에는 바가지를 들고 부엌 가득 들어찬 빗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 했다. 어머니는 신발장 속에서 낡
유성문 주간
2023.06.15 02:18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우체부
어차피 지각은 각오해야 했다.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 동네를 도는 시간은 정확히 10시부터 11시 사이였으니까. 이윽고 저 멀리 우체부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골목 어귀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나는 쏜살같이 우리집 대문 앞으로 달려갔다. 잠시 숨을 고른 나는 최대한 태연스레 아저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어, 아저씨!
유성문 주간
2023.06.08 00:03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모의총
변 선생님. 교련시간은 제게 최대의 고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제식훈련 중 총을 떨어뜨려 부러진 일은 결코 고의가 아닌 단순한 실수였습니다. 그 후로 저는 총 값을 변상하라는 선생님의 농 섞인 집요한 추궁에도 불구하고 내내 버티다 무사히 졸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습니다. 문무대로, 논산훈련소로, 전
유성문 주간
2023.06.01 09:00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성냥
“토요일 오후 4시, 별다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남몰래 보낸 나의 연통을 보기는 보았을까. 두 시간이 넘도록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애꿎은 성냥통을 열고 테이블 위에 성냥개비를 몽땅 쏟은 다음, 그것으로 탑을 쌓아나갔다. 1층, 2층… 15층, 16층… 레지의 눈총으로 등에 진땀이 밸 무렵 나는 힘없
유성문 주간
2023.05.25 09:00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등사기
그 해 5월 17일, 주말을 이용해 지인을 만나러 광주로 내려가려던 나의 계획은 수상한 소식들과 함께 저지되었다. 그리고 만 하루 만에 그 가녀린 소식선마저 두절되고 난 후, 나는 거의 미칠 듯한 공포와 분노 속에 밤을 지새웠다. 더는 혼자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대충의 첩보(?)들을 선배들에게 전달했고, 선배들은 마침내
유성문 주간
2023.05.18 12:52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카세트레코더
그래도 이만하면 대단한 진보였다. 어렸을 적이야 아버지가 마루기둥에 못을 박고 걸어놓은 트랜지스터라디오의 ‘가족가청권’ 안에서 귀를 세우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카세트는 ‘방황하는 청춘’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뮤직’에 맞춰 ‘디리 고고춤’이나 추거나, 송창식의 을 들으며 정말
유성문 주간
2023.05.11 01:25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철인28호
날아라, 철인28호. 푸른 하늘을 나는 새처럼. 비록 짜장면 한 그릇에 어린이날 치레는 끝이 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5월은 우리들 세상이다. 그 단단한 어깨, 우람한 팔뚝으로 세상의 적들을 무찔러다오. “아빠! 어린이날 선물로 게임기 사주세요!” 나는 화들짝 놀라 진짜 세상으로 돌아왔다.
유성문 주간
2023.05.04 07:08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종이인형
누이는 새로 사온 종이인형에 이것저것 옷을 입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누이의 패션감각은 길러지는 것이었지만, 그때 나는 다만 그 종이인형의 옷들을 자꾸만 벗겨보고 싶을 뿐이었다. 누이의 패션쇼와 나의 누드쇼 사이에 종이인형의 고리들만 애꿎게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유성문 주간
2023.04.27 03:11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전화기
아버지는 새로 들여놓은 전화기에 ‘용건만 간단히’라고 꼼꼼히 써넣은 것으로도 모자라, 다이얼 구멍에 작은 자물쇠까지 채워 놓으셨다. 우리들은 자물쇠가 채워진 다이얼을 최대한 끝까지 돌렸다가 그것이 되돌아가면서 내는 ‘좌르르’ 소리를 넋 놓아 듣기도 했고, 혹여 벨소리가 울리기라도 할라치면 서로 먼저 받겠다고 다투기까지 했
유성문 주간
2023.04.20 13:21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고무신
그렇게 매운 겨울을 물리치고 봄이 왔을 때, 지줄대는 시냇가는 비로소 우리들의 온전한 놀이터였다. 봄나들이 나온 송사리들은 기차표이거나, 타이어표이거나 우리들 고무신으로 만든 어항 속에서 잠시 노닐기도 했고, 이내 싫증이 나면 우리는 고무신 배를 만들어 띄워 보내기도 했다. 아뿔싸, 잠깐 한눈파는 사이 놓쳐버린 고무신 배
유성문 주간
2023.04.13 00:59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엿장수
동구 밖에서 엿장수 가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대문을 박차고 골목길로 달려나갔다. 헌 병이거나 양은 그릇, 심지어 쓰던 책까지 들고 나오는 놈도 있었다. 흥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엿치기’가 시작되었다. 엿판 위의 가래엿 중에서 가능하면 굵은 놈으로 골라 반으로 분질러 보지만 구멍의 크기가 꼭 굵기에 비례하는 것
유성문 주간
2023.04.06 01:10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나무기러기
말하라. 내게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 그토록 우아한 새 한 마리가 어떻게 내 가슴에 내려앉았는가를. 그러나 무심한 시간은 날갯짓을 지우고, 물위를 채우던 동심원마저 이내 가라앉았나니. 말하지 말라. 떠있으되 물밑으로 허우적거리는 오리의 서글픈 사랑을. 결코 다시는 날아오르지 못할 사랑의 슬픈 기억을.
유성문 주간
2023.03.30 08:13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핸드백
봄바람은 싱숭생숭했다. 봄볕 아련한 날, 어머니는 조용히 길을 나섰다. 즐거운 나들이 길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바람기에 어머니가 맞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고작 그렇게 친정으로 가버리는 것뿐이었다. 연분홍 치마는 속절없이 바람에 날리고, 문밖을 나서는 어머니의 슬픈 뒷모습 곁으로 금속성 핸드백만이 괜스레 번쩍거렸다. 가녀
유성문 주간
2023.03.23 09:00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트랜지스터라디오
아버지는 애지중지하던 트랜지스터라디오에 든든한 식량창고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하셨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으로 대용량 배터리를 업힌 후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다음, 마루기둥에 못을 박고 떡하니 그곳에 라디오를 걸어두셨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 가청권’ 안에서 우리 온가족은 살림도 하고 공부도 했다.
유성문 주간
2023.03.16 08:40
추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풀무
할아버지는 겨우내 골방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던 묵은 고구마를 꺼내왔다. 더 무르기 전에 춘궁을 때울 요기라도 삼을 작정이었지만, 사실 우리는 밥보다 고구마가 더 반가웠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풀무를 돌리는 일은 내가 맡았다. 불길이 세질수록 솥단지는 들썩거리고, 고구마 익는 구수한 냄새가 부엌 가득 넘쳐났다. 시장
유성문 주간
2023.03.0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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